연대임금제 및 스웨덴 모델 : 인구, 예산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추상적이고 막연하며 어디에도 구체적 실천을 요구, 및 계획하는 문장은 없다. 구체성이 없고 해당 현상의 역사적 원인과 현재 메커니즘을 설명치 않는 글의 전형이다. 연대임금제를 소개하지만 연대임금제가 도입된 배경의 설명이 부재한 것이 아쉽다. 연대임금제를 실시하면 임금깎아 돈 버는 한계기업들이 퇴출되고 사회적으로도 선순환이 가능하다. 물론 해당 기업과 노동자가 빠른 시간내에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새로운 산업에 재배치되어야한다는 전제가 있다. 노동자의 단결이라는 현실부터가 막막한 대한민국의 사회에 해당모델을 도입하기엔 적잖은 무리가 있다. 동일임금이 기업 수익성의 높낮이와 노동자의 기술력 우월에 관계없이 작용하는 사실이 재벌을 탄생시켰다고 설명한다. 허나 노동력의 우월성이 저평가받는 것은 타기업의 퇴출로 상쇄돼며 재벌의 문제를 조명하기엔 부작용이 가소롭게 느껴진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071217123123&Section=01 탈정치성이야말로 가장 노골적인 정치성이기 때문이다.

뭐 별로 의미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재미가 있다. 근로자의 날에 개장하는 캐리비안 베이와 경향신문을 비롯한 주류 언론의 해당 사진 공개다. 굳이 날이 겹치고 3S같은 낡은 종류의 수법을 연상하는 것과 시선을 끌려는 수작이라 생각하는 것은 너무 찌질한 태도일까 궁금하다.

"'착한 정부'는 '코뮌'에서 나온다" : 글 초반 모델의 피상적 역사를 다룬 부분은 그다지 영양가있지 않다. 하지만 낙후된 경작지와 지리적 위치상 봉건제의 영향을 덜 받은 역사를 조명한 것은 마음에 든다. 자영농의 높은 국가내 비중과 신교의 보급으로 인한 문맹률 타파와 지방결속을 코뮌의 오랜 전통유지의 배경으로 꼽는다. 지방자치가 강력하고 세금의 납부와 쓰임이 자치성이 강하단 특징도 지적한다. 그러다보니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다. 살갗에 닿는 정치의 향기를 생활 속에서 맡을 수 있고 노동자는 파업을 하는 대신 끊임없이 책을 읽는다.
<지역마다 생겨난 노동자 코뮌의 최대 관심사는 '교육'이었다. 노동자가 지방자치 속에서 실력을 발휘하고, 더 나아가서 중앙 정부를 운영할 수 있으려면 정책을 이해하고 설계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자 코뮌은 '인민의 집'을 곳곳에 건설했다.>
<……노동자들은 지적, 문화적, 도덕적 우위를 통해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민당과 노조 및 지방시민들의 구체적 협력 메커니즘을 다루지 못하고 겉핥기만 한 점은 아쉽지만 그래도 화두를 던졌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은 기사다. 비교정치 및 세계적 정치제도역사를 더욱 더 공부하여 지역마다 정치형태가 달라진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그가 현재 갖는 의의와 함께 국내에 시사하는 실천적 대안을 더 알고싶어지게 한다.

실존이 구토를 낳지 않는 시대에 인간은 도피하고 쾌락을 찾거나 사회참여로 정체성을 가지려 하는 길 이외에 다른것이 있는가 궁금하다. 인문학적 소양이 매우 짧은 지라 어디서 주워들은 것들을 허접하게 조잡하게 끼워 맞추는 일밖에는 못하고 있다.
TV가 실제고 당신들의 인생은 가상이라고 믿기 시작해요. TV에서 입는 것처럼 입고, TV에서 먹는 것처럼 먹고, TV처럼 생각하고 사는 것은 집단 정신착란입니다. 우리는 실존인가 허상인가. TV는 기준이고 우리 삶은 기준에 맞춰집니다. 이거는 이 동영상에도 적용되는 말 아닌가 싶다. TV라는 단어를 동영상으로 바꾸기만 하면 바로 성립된다. 동영상을 비판하는 것이 비판을 위한 비판인가 의심스럽다. 허나 비판받지 않아야 할 것은 없다. 그야말로 헤게모니가 되어버릴 테니까 말이다. 각종 미디어와 교육, 책과 정보와 자료들을 수습하고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자신만의 생각을 그리고 행동을 갖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무기나 석유회사에 자금을 공급한다거나 원재료를 공급한다는 측의 간접적 지원이 이루어졌다? 알아야할 필요가 없는 것들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도 아주 익숙한 정치경제적 행태이다. 미디어를 통한 단순생각뿐 아니라 현실인식은 주입된 것이다. 분열도 조장된것이다.
찾을 수 없는 것을 찾다. 테러와의 전쟁은 제목부터 성립이 불가능하다. 이길수 없는 지속가능한 전쟁을 일으켜 자치와 자유를 억압한다. 헤게모니를 지배하고 자발적 복종을 하도록 만든다. 어디에도 강요는 없다. 소유나 존재냐 개인의 실존으로부터 인간을 분리시키는 소유와 소비적 삶의 양식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바이다. 하지만 인간의 실존을 실체와 분리시키는 것은 종교, 인종, 계급과 문화등 다양한 분리주의가 있다. 그들은 정체성을 강요한다? 스스로 무언가 되고자 하게 만든다 원하게 욕망하게 만든다. 기준을 낳고 우월감과 열등감을 낳고 경쟁과 쳇바퀴를 낳으며 모두 길들여지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실존을 받아들이는 이는 없다. 아주 거시적인 생각이긴 하다. 쉽게 생각을 주입시킬 수 있는 타자화는 분열과 전쟁을 낳는다. 아니 전쟁을 낳는 것은 다른 요소일뿐 전쟁을 차라리 당연한 필요악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사실 이상주의적인 문장이긴 하다. 우리 사회는 범죄로 가득차 있을까 범죄를 만드는 것이 차라리 사회는 아닐까 범죄를 사후 감독 하는 것보다 사전 예방하는 일이 어려운 일일까하는 생각은 해볼만 하다. 분리시켜 보기가 편견을 낳는다는 사상에 대응하는 쉬운 방법은 편견이 아니게끔 사실을 조장하는 것이다. 이상주의적이다 사람까지만 분리를 철폐할 것인가 생명체와 식물에게까지 주술적인 감정을 가질것인가 지금에 와서는 실천불가능한 사상들이다. 내이름은 그저 이름일뿐 나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보다는 인간이고 모두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시키려 하나 역시 이상주의적이다. 체제를 각성한다고 되는 것은없다. 좀 심하게 말하면 군산복합체는 때가되면 차라리 다른 산업들을 인수할 것이다. 조작된 감정을 조작이라 말하는 것은 어렵다. 조작자가 거부감을 가짐은 물론 당사자 역시 싫어할테다. 욕망과 삶의 형식들은 개인에게 전적으로 달려있고 각성과 함께 욕망과 삶의 양식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은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경제력과 소비 및 소유의 포기는 개인에게만 달려있지 않다. 보수주의자들이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지켜야할 것이 있다면 사람들은 저항하지 않는다. 잠자코 지 챙길 것만 챙기게 만들기 프로젝트! 지켜야 할 것이 자신 이외에 다른 것이 생긴다면 사람들은 잠자코 있는다. 그래서 삶의 양식을 그렇게 만들어왔고 동성애를 금지했고 빚과 법을 만들었으며 예술과 문화적 과자와 마케팅을 만들었다. 선택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귀속된 시대가 아니다. 그래서 개인적 지위를 갖는 것은 중요하다. 주체적 생각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언론과 교육이 편파적이고 정치적이며 권력에 지배받는다는 생각은 이제 그다지 특별한 정보가 아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알아도 바꿀 수 없도록 빚과 법과 경제력으로 개인들을 옭아 매어버렸다. 그리고 역시 국제적인 기준에서의 착취는 알기 어렵다. 해당사항을 알아도 우리는 여전히 오늘도 문화 과자를 섭취하며 그저 아는 것에 끝나는 생산요소일 뿐이며 공정무역을 알아도 공정무역 초콜릿을 사는 이들은 드물다. 공정무역은 알아도 다른 국가의 일상적 인권침해는 아무도 모르고 알아도 잊혀지며 지속적으로 안다해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극적인 것들이 모두를 유혹하고 있다. 수구권력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체게바라 티셔츠는 놀이일 뿐이다. 체게바라는 장식이고 산업일뿐이다. 자본축적론은 매우 매력있는 전개인 듯 싶다. 그리고 난 이 글이 끝나면 게임을 하며 유흥에 젖는다. 나는 과연 조종되고 있는것인가 헤헤. TVTVTV PROPAGANDA PROPAGANDA = AMUSEMENT PARK = TIME KILL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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