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적으로 볼셰비키 혁명과 극우 파시즘의 등장은 1차 대전의 여파에서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1차 대전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형성되기 힘들었을 反정치적 구호를 내세운 정치운동이라고 보는 것이 맞는 듯하다. 대중이 정치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에 발맞추어 그들의 요구와 심리를 교묘하게 파고든 선동적 전술과 우연성이 강한 운이 겹쳐져 발생한 몇 안되는 사례로 보여진다. 파시즘과 공산주의가 실패한 수많은 사례들이 그를 뒷받침한다. 일단의 공통점을 살펴본다면 사회주의 세력의 비권위주의가 역설적으로 정치적 공백을 낳은 것으로 보여진다. 대중의 요구를 효율적으로 관철시키지 못하는 우유부단함과 맑스주의가 교리화되었다는 점도 공통성이 있다. 묶어버릴 수 없는 각각의 특수성과 의문점들이 산적해 있다. 
 피상적으로 극좌도 극우도 아닌 대중의 마음을 극좌나 극우 어떤 세력이 먼저 차지할 수 있었느냐로 보이지만 너무 단순화 시킨 결과인 것은 물론이다. 더불어 자세한 사항은 알지 못하지만 20세기의 정치지형은 농민이 어떠한 입장을 보이느냐에 따라 엄청난 차이점을 보여온 것으로 보인다. 독일과 이탈리아 농민은 파시즘을 선택했고 러시아는 결국 볼셰비키를 지지했으며 북유럽은 여건상 의회 사회주의를 채택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역시 피상적이지만 오랜동안 민주주의적 전통이 강하고 문화적 선진국의 지위를 유지하던 영국과 프랑스는 어떤 극단 세력도 꽃피우기 힘들었다. 더불어 해당 정치운동들의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물리적 힘이 적지않은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기존 질서 안의 군인들이 물리적 힘을 가지고 해당 정치운동들에 동참한 것이 그들에 상당한 힘을 실어주었고 이 요소가 기득권에게 그들을 무시할 수 없도록 만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경제적 비참성이 최악의 길을 달렸다는 점 역시 그가 정치적 극단성을 불러왔다고 생각된다. 후발 산업국에선 상당한 성과를 거둔 극단 세력이 역시 북서부 유럽에선 뿌리내리기 어려웠다는 피상적 결과가 있긴 하다. 1차 대전 후의 정치는 질서라는 화두가 중요한 의미를 가진 것으로 보인다. 우파에 대한 대중의 감정 역시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어 보인다. 러시아 10월 혁명에 가장 연관된 정치적 사건이 반동적 군인의 수도진군 사건이며 북서부유럽은 보수파 기득권에 대한 적대감이 극단적이지 않았다는 점 역시 작지만 그 시절 역사의 한 요소가 될 수도 있다. 더불어 거부감을 가질 수 있는 명제지만 탁월한 지도자 역시 그 존재 여부가 각 국 역사에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것으로 주장하는 글이 많다. 물론 핵심적 요소는 아니지만 배제하기 힘든 영향을 가졌다는 것이다. 한 두가지의 고정적 역사관으로만 시대를 보는 것에는 문제점이 많은 것으로 보여진다. 이를테면 권력의지를 가진 지도자를 가진 정치집단 보다는 사상의 순수성에 집착한 정치세력들이 대부분 실패를 겪었다. 물론 이는 20세기 '난세'의 이야기이니 지금에 와서까지 그 교훈을 얻으려는 시도는 부적절할 수가 있다. 하지만 대중 시민은 필요한 경우 등을 돌리더라는 고전저작들의 입장은 오늘날 대한민국에까지 적용된다. 더불어 러시아 혁명기는 국가수반이 원정을 떠나 수도에 없었고 독일과 이탈리아의 치안상태는 좋지 못했으며 정치적 선동에 국가가 단호한 대처를 내리지 못했다는 행정부의 행태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비교해 영국과 프랑스는 정치적 선동에 국가 권력이 선제적이고 단호한 대처를 내린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는 지금 대한민국에까지 적용해 볼때 꽤나 의미있어 보인다. 하지만 어느경우이든 경찰력이 아닌 군대의 치안행정 투입과 '발포'의 여부는 역사를 가르는 또 하나의 중요한 물줄기가 되었다. 하지만 이 경우에서 또한 절대적인 요소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버마같은 경우엔 상습적 발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것이 타국의 경우처럼 상당한 역사적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발포여부가 우발적인 것인지 혹은 지도자의 뻔뻔함에서 나온 명령에 의한 것인지 여부가 중요해 보인다. 이 곳에서 역시 이른바 지도자의 역사적 중요성을 무시하기 힘들어 보인다. 
 역시 대충 훑어보면 큰 혼란 없이 유지해온 경제와 정치제도 속으론 극단적 정치운동이 파고들기 힘들다는 명제가 단순하지만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사회의 불만세력의 계층이 어떠한 것인가에도 지금까지 그 중요성이 부각될 수 있어보인다. 파시즘과 극우세력은 농촌을 기반으로 성장했지만 나중엔 그들을 버리면서까지 중간계급의 이익을 대변하는 행태를 보였다. 그에 반해 자세한 사항은 솔직히 모르지만 러시아의 경우 대다수의 군중의 계급은 빈민 노동자와 최악의 경제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농민이라는 사실이 있다. 이는 챠베쓰의 집권이 중간계급의 표에 의해 갈라졌다는 베네수엘라 좌경화의 시발점과 우리나라에 중간계층이 많으며 한국 진보가 그에 맞은 대책을 내놓을 구호가 부재해 보인다는 지금의 시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결정론적 역사관으로서 파시즘의 등장을 깡그리 반박한다. 가독성이 뛰어나 재미있게 읽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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