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 notes ?

잡담 2009. 5. 5. 10:24

금리가 오르지 않을거라 예상한다면 모두 채권을 구매한다. 돈을 흡수할 수 있는 적정 금리가 있는 것이다.
금리가 내려가면 채권을 팔까. 신용경색의 상황에서 미국채권을 팔까. 팔수도 있다 돈이 급하다면.
하지만 그만큼 수요도 많다. 채권가격은 높고 금융기관은 안전자산을 선호한다.
정부가 할 것은 돈굴리기. 어렵군하.



언뜻 보기에 중국의 자금줄이 미국채를 구입하지 않으면 둘 다 위험하다고 한다. 하지만 어디선가 실질적인 우위는 미국에 있다고 들었는데 그 근거를 까먹었다! 아마도 중국내 공장이 국내 자본이라기보다는 외자이고 상륙 자본이 뜰 때의 어려움을 내세웠던 것 같은데 설득력이 있으려나. 나같은 꼬꼬마는 참 정보를 찾는 일이 쉽지가 않다. 그런데 중국이 산게 다 T-bill 인가 T-notes 인가 빌인가?



< 러시아는 핵으로 무장한 이란이 광범한 지역전쟁을 일으켜 푸틴 정권에게는 생명의 피와도 같은 석유 가격이 오르기를 원한다. > t note china 로 검색하다가.


이자의 존재가 시중 통화량을 감소시킨다? _ 양원석
가능할수도?
쉬운 논리일 수록 허점이 많지만 재미가 있다. 엄청난 통화부족이 아닌바에야 디플레이션이 일어날리 만무하다. 하지만 방금 본 바와같이 공황의 시대에 모두가 동시에 상환을 한다면 이야기가 재미있다.
하지만 통화공급을 대출을 통해서만 하는가 그리고 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이 있다.
채권을 사거나 외환을 살 수도 있다. 그럼 동아시아 국가라면 후자의 영향력때문에 해당 이론의 적용여지가 감소하는가. 마약과 같은 것인가 당장 좋지만 더 갈증이 나고 원하는. 이자의 존재가 통화량을 감소시키는 논리는 그럴듯 한데 실질적으로 현실경제에 찾아볼 수 있는 사례인가 궁금하다. 중국과 같은 국가에서라면 나의 상환이 타인의 빚이 아닐 수도 있겠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외국인에게 진 빚이로구나! 그게 국채에 물려서 지금 중국이 짜잉난 거겠고!? 자세한 것은 모르겠다. 중국의 기축국에 대한 야심이 있어보인다는 이들이 많지만 왜 굳이 그런 것인지도 잘 모르겠다.



대출 릴레이 - 계속 대출을 늘린 방법

그리고 또 하나
시중에 풀린 돈을 갚기 위해서는
누군가 또 다시 대출을 받아 통화를 늘려야
비로소 빚을 갚을 수 있음을 말씀드렸습니다.
 
이 두 가지를 종합해서 살펴보면
계속해서 누군가는
대출(빚)을 더 크게 받아야 한다
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_ 양원석

화폐공급을 기업에 했다가 가계로 바꾸는 식의 공급자 관점(?)이 참 새롭다. 대출기조가 변화한 것에 명확한 근거가 있지 않고서는 그럴듯 한 설명이다. 독점기업에 돈을 공급했다가 상환시에 가계에 빚을 물린다는 것이다. 단편적이지만 시간을 두고 진행하면 그럴듯한 구조일 수도 있겠다?

…… 더불어 위의 예라면 본원통화를 늘릴 필요는 없으며 금리나 감세, 환급이나 3세계 융자등을 통한 다양한 방법으로 돈을 풀수 있다고 지적한다.
폰지게임!?
그린백!?
…… 망해야 되는 곳이 모두 망하지 않기에 그 어느곳에서도 제대로 신용의 청산이 이루어지지않아 금융부분에서의 돈의 흐름이 막히고 …… - 좀 논의가 필요한 대목이기는 하다.
_ 리어왕님의 댓글

법화 : 채권자는 기한이 다 된 빚을 받을 때 채무자가 법화를 지불수단으로 제시할 경우 이를 거부할 수 없다.



임금 삭감이 경제를 살릴 수 있을까? _ 폴 크루그먼



폴 크루그먼의 오피니언을 오랜만에 읽었다. 세상에 웹에 쌓이고 쌓인 읽을거리들에 치이고 치여 하루 죙일 컴퓨터를 하고 뒹굴거리며 책을 읽어도 그다지 얻는 내용이 많지 않고 가끔 내 생각을 정리하는 수준에 머물렀다.

아 또 글의 호흡이 길어지고 있다.

아무튼 꼬꼬마의 내공을 기르기에 좋은 자료라 생각되어 아주 가끔 읽은 바였다. 취약한 영어실력에 도움이 됨은 개뿔
그저 관심있는 주제를 읽기에 좀 더 영어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고 일상화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었다.



경제단위가 동시에 임금을 삭감하고 있는 'Falling Wage Syndrome' 을 더 깊게 분석한다.


잡 마켓이 타이트해지면 임금 내려도 찍 소리 못한다능. 어디 갈데가 없다능 ㅠ;
결국 폴링 웨이지 씬드롬은 아주 자알 ~ 진행이 된다능!

경제학을 배운 이들이라면 임금하면 노동시장을 생각할 듯! 임금하락하면 노동 수요 증가?
그냥 임금수요 곡선 자체가 왼쪽으로 쉬프트 했다고 생각하면 될 듯, 고용하락 -> 생산하락 ^^


마찬가지로 케인즈의 기본적인 저축의 역설을 현대적으로 인용한다.
한 두명의 사람이 빚을 갚고 자산으로 수익을 내는 것은 좋은 일임미다. 하지만 '모두가' '동시에' 빚 갚으면 돈이 증발하구 자산 팔면 헐퀴 왓 더 헬! 산이 높으면 골이 깊은 법.

뭐 이정도면 Game theory를 끌고 와도 재미 있겠다. 애덤 스미스 이후로 신앙되 온 경제원리!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일만 하면 전체적으로 다 이득이야" 어잌후. 아주 무서운 세뇌방식이지요.
항상 간단한 그래서 매력적인 논리는 의심부터 하고 봐야 하는 법! 흑 교수님이 주옥같은 말을 많이 남겼습니다.

아 그리고 임금은 따운되는데 빚은 고대롭니다. 이 슬픈사실! 우리 불쌍한 경제주체님들은 빚 갚을려고 열심히 저축을 하지요. 모두가 저축을 합니다. 모두의 기업에서 물건이 안 팔립니다. 그리고 모두가 소득이 줄어듭니다. 모두의 임금이 깎입니다.
없는 돈 더 높은 이자 주고 빌려 막고 돌려 막고 막고 막고 ……

아 근데 그런다고 물가가 내려감미까 아니올시다. 우리네가 사는 물건들이 다 식품, 교통비 등 어짜피 써야하는 것이 대부분이라서 가격 올린다고 안 사지 않고 내린다고 더 사지 않는다는 사실! 비탄력 ~


아침부터 일어나서 할 게 없어 이것저것 만지다보니 글쓰기의 새로운 기능들을 발견했다. 재미 있어서 이것저것 써보는 중인데 처음엔 더 깔끔해 지는가 했더니 더 조잡해지지 않는가 싶기도 하다.

 <문제는 '동시에'>
 나혼자만 고짓거리를 하지는 않는다는 말씀!





이유 없이 그냥 끄적이고 싶을 때가 있다.
오늘 아침은 안개가 끼어있다. 새들(?)의 짹짹이는 소리가 아주 좋다. 예전 태지대장의 앨범을 하루가 멀다하고 듣던 시절 outro에 들리는 짹짹이의 소리를 이후로 저런 싸운드는 내게 묘한 기분과 함께 평화감을 준다.
문단이 구분되지 않고 이어서 글을 쓸수록 지저분하고 읽기 싫어진다. 더구나 나의 글은 현학적인 취향에서 아직 채 벗어나질 못해서 더 그런다. 열폭증세일 수도 있고 워낙 압축된 용어로 시작을 하던 습관이 남아서 그런 것일 수도 있다. 간결하고 쉽게 읽히지만 핵심을 잘 전달하는 문장들을 만들고 싶다.
길가에는 어떤 사람도 다니지 않고 고요한 풍경과 움직이지 않는 나무의 움직임이 나를 끄적이게 만든다. 내가 생활하는 곳들엔 나무가 많아서 참 좋다.


이렇게 대놓고 걸어 놓으면 쪽팔려서라도 심심할 때 찾아보거나 더 알려고 노력할 것 같아서이다.

책을 읽으며 감정이입하고 놀라거나 존경할 필요까지는 없다. 생각에 종속되지 않는 나만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1. 일전에 비대칭 정보와 주인 대리인 이론에 관한 실증사례를 소개하고 그 극복에 관하여 아주 세세하고 미시적인 논의를 다루었던 책을 읽었는데 제목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2. 어렴풋한 메커니즘 말고 상세하고 실증적인 자료와 이론을 통해 '처음' 화폐가 유통 - 태환(?) - 되고 중앙은행이 그 통제를 시작한 역사를 알고 싶다.

3. 지준율이 실제적 현실적 대안으로서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알아보고 금리 파급 경로와 메커니즘을 복습해 정리하고 재할인율과 국채 운용방식에 대한 상세한 사항을 알고 싶다.

4. EU 화폐 통합의 이유 및 필요성과 그 혜택과 영향을 알고 싶다.



자유롭고 능동적인 존재적 실존양식으로 학습하려는 나의 노력의 일환으로 가진 의문들이다. - ㅋㅋ.

5. 아프리카 빈국의 고통 원인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알고 싶다. 지리적으로 공산권과 인접치 않아 1세계에서 발전시킬 인센티브가 존재하지 않아서인가, 자원착취가 계속되고 있어서인가, 토양의 문제로서 기본적 농업생산성이 부진해서인가 등등이 궁금하다.

6. 만약 끊임없는 분열과 전쟁이 그 원인이라면 도대체 빈국인 아프리카에서 무기를 구입할 돈은 어디서 얻을 수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 의문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시민단체가 있는가 궁금하다.

7. 효율적 교육을 통한 기술 발전과 저임금, 효율적 금융자원 배치와 외부 차관과 원조로 인해 '대충' 일본과 한국, 대만등이 발전했다고 가정한다면 유럽세계에서 끊임없는 견제를 받았던 독일이 몇번의 패배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발전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하다.

8. 덴마크와 러시아, 중국, 독일, 아프리카의 역사가 특히 궁금하며 미국과 일본, 독일, 중국, 인도와 핀란드, 스웨덴, 영국, 프랑스의 산업구조와 고용인구 수용처가 궁금하며 북부유럽과 아프리카의 인구와 지리상 위치가 해당 국가의 경제력에 어떠한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다.

기존에 궁금하다고 하면서 능동적으로 찾을 생각은 별로 하지 않고 뒹굴거렸던 시절에 끄적여 놓은 것들이 있다. 자유로운 영혼으로 존재적 실존양식으로서 삶을 영위할 때 궁금하고 찾고 알고 싶은 것으로서 씨부려 놓고 나중에 레포트 따위의 형식으로 싸지르기로 한다. - ㅋㅋ.

9. 플라자 합의의 배경과 영향.

10. 소련 경제의 몰락 배경.

11. 브레튼 우즈 제도의 성립 배경과 향후 환율제도. - 공산권 대치와 수입력 및 석유 때문에 달러를 통용시키려 한 것인가?

12. Game Theory : 경제 범위가 작아지면 서로를 위한 경제 활동이 가능하다. - KBS 스페셜 볼로냐 조합이 인상깊다.

13. 주주 이득과 노동자 이득의 합치 : 노동자 자본에 대하여 - 생산수단의 공적 소유란 점에서 기존 생각과 비슷한 듯싶다.


책에 대한 소개는 필요가 없겠다. 계속해서 미완의 글들만 배설하고 있어 찜찜하다. 아마도 낚여 들어온 분이 계시다면 또한 미안하다 하지만 원체 배설글이니 이해를 부탁합니다.

한번 더 검토가 필요한 책이지만 전체적인 리뷰를 돌아본다. 초반의 유치산업 발전과 관련된 행태들은 처음 접하는 개념이라면 대단히 신선하다. 장하준 교수의 책 전반에 걸쳐 지겹도록 보는 주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른 책에 비해 특허제도에 관해서 좀 더 자료를 준비해 공격한다. 인상받아 기억나는 부분은 특허제도로 인한 해당 산업 발전이 그리 연관관계가 높지 않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대부분의 특허받은 기술이 정부의 지원을 통해 이루어졌으나 그 이득만은 온전히 사유화된다는 점을 비판한 대목도 눈에 띄는 듯 싶다. 특허 이외의 인센티브를 너무 무시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도 마음에 든다.
미완의 글이라도 굳이 리뷰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인상적 주장을 싣는 문단으로 하겠다. 언젠가 산업조직론에서 배웠던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개념인 '동태적 경쟁' 과 흡사한 주장을 싣었다(?) 실었다(?). 시간을 경쟁시장의 고려대상으로 중히 여기고 아직 등장치 않은 잠재적 경쟁자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이론이었다. 평소 미시경제학은 어용학문이라 생각하는 터라 마음에 두어 보지 않았고 그 의미만 새겨두었던 바 굳이 더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장하준 교수는 '경쟁이 그토록 좋은 결과를 불러온다면 개발 도상국을 보호해주고 키워주어야 한다. 장래에 그들이 성장하여 지금의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산업을 이룩한다면 그들에게 뿐만 아니라 현재의 다국적 기업들에게도 유리한 일이다. 왜냐하면 경쟁은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불러오고 사회적 효용 - 외부효과 논외 - 을 극대화 시키며 "모두를 좋게하기" 때문이다.' 고 하며 그들의 주장과 행동의 괴리를 비꼰다. 언젠가 인문학 교양 수업을 들을때 교수님이 말한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없는 사람들은 경쟁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질것 같으면 경쟁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이길 것 같으니까 경쟁을 하자고 하는 겁니다.

신선한 말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괜시리 꽤나 마음에 드는 관점이었다. 아무튼 그렇듯 경쟁을 하자는 주장을 비꼰 말이 참 재밌고 인상적이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계속 가슴에 남아 있는 교수님의 말을 하나 더 인용해 봐야겠다. 나중에 따로 쓰거나 정리하려 했지만 원체 배설글이기도 하니 그렇다. 그리고 조금 더 읽고 공부를 해야겠다. 인문학적 소양이 매우 부족한 것을 느끼며 어떻게든 푸코에 도전해서 성공해 봐야겠다.

항상 무엇이든지 회의하는 태도를 가지고 의심 하십시오. 누군가 주장을 한다면 그 대화로 이득을 얻는 이는 누구인지 인지하십시오. 모든 인간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은 권력작용의 일환이며 담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담론이라는 말은 헤게모니 다음으로 나에게 깊은 인상을 준 단어요 개념이었다. 장하준 교수의 책에 대한 리뷰인데 내 개인 인상만을 적었다. 미완성이니 더 살을 붙여 나가야겠다.



민 - 관 - 시장
의 고리에서 관 - 시장의 고리를 끊을 것이 아니라
민 - 관의 고리를 강화함으로써 민 - 관 - 시장의 고리를 이루는 것이 정의상 옳다.

1인 1표의 민주주의 시대에
1달러 1표의 시장이 정부와의 고리가 끊길수록
민주주의의 손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기본적인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는 정부를 통제하고 정부가 시장을 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1인 1표의 자유가 행사되어야지 민주주의의 권력을 배제한 자유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아니다. 협소한 의미의 자유일 뿐이다. 정부의 규제가 시장의 기능을 억제한다는 것은 이데올로기일 뿐이며 설사 그런다해도 그 고리를 약화시키는 것은 얼토당토 않다. 그네가 말하는 것처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상충하지 않고 시장 = 자유 = 민주주의 = 시민 의 고리가 맞는 것이라면, 초점은 시민과 민주주의와 정부의 고리가 더욱 강화되어 시민이 정부를 통제하는 방향에 맞추어져야 한다. 시민 = 정부 라면 시장 = 시민 이기 때문에 정부 = 시민이기 때문이다. 시장이 정부를 께름칙해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



인플레이션! 이 무조건 나쁘다는 주장은 역시 이데올로기다. 생각해보라 인플레이션이 싫은 사람들은 임금 노동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차라리 금융소득을 얻는 이들에게도 피하고 싶은 일이다. 오히려 경제성장의 시기에는 인플레이션이 바람직할 수가 있다는 견해를 비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인플레가 있다면 돈을 꽁쳐두기 보다는 자산을 사려는 움직임이 강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 물론 그 자산이 부동산으로 흐르는 일은 논외로 하자 ㅠㅠ
미완! 다른 일 하다보니 씁.
 

돼지 인플루엔자는 '쑈'!

<현재 세계 제약 산업이 당면한 문제는 연구 개발 생산성 저하와 성장 엔진역할을 하던 블록버스터 의약품 특허만료로 나타난다. 다른 산업들과 달리 제약 산업은 지적 재산권에 근거한 독점 판매권을 무기로 10%대 고성장을 이루며, 세계시장 45%를 미국이 차지하고 있다.>

축산물 바이러스 진단 및 예방사업이 가능하다. 선진국의 의약품 구매력은 갈수록 약화되고 있는 반면 신흥 개도국들의 소비시장이 의약업계에서 중요해지고 있다. 줄기세포의 연구를 통한 '재생치료' 의료산업 발전이 도모되고 있다.

필립피셔님은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상당한 듯 싶다. 통찰력있는 발상으로 항상 놀랜다. 사소하게 지나칠 수 있는 문제들에서 무언가를 발견해내고 의심하고 캐치해 내신다. 기후의 변화가 예측 할 수 없던 질병의 패턴을 낳고 있다. '빈곤계층에게 더 위협적일 수가 있다.' 라는 것이 사실이라면 해당 의약품의 수요 역시 식품과 같이 상당히 비탄력적인 선을 갖게 될 것이다. 좀 비약하자면 사람 죽이는 사업이란 점에서는 전쟁과 비슷하다. 하지만 전쟁과 같은 파급력과 고용력이 있을지는 의문스럽다. 식품과 함께 해당 의약품은 빈곤계층에게 가장 빠른 소비의 대상이 된다. 혹은 정부가 지원하고 해당 정부에서 돈을 받는 재밌는 패턴이 발생할 수도 있다. 아 물론 비지니스하는 사람에게는 사회적으로 고용은 아무 의미를 가지지 않을 수가 있다. 자기들이 돈 벌면 되니까 해당 산업과 고용력은 물건 사줄 사람이 적을 때 생각해 볼 문제다. 종이 화폐가 확실하게 정착된 시대에 국제기구가 돈 빌려주고 고걸 다시 받거나 채권으로 부동산을 획득하거나 환율로 추가 이득 볼 수도 있고 돈 빌려줘서 이자까지 챙길 수도 있다.

<未完> ㄹㄹ ??

웹 리뷰 2009. 5. 4. 10:15
톨레랑스-관용-그리고-용산
아시아 기금

행복만 가득한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 - 올더스 헉슬리
<알파 등급으로 '부화'된 사람은 최고의 엘리트로서 사회의 지도계층에 맞도록 교육되고, 천한 일을 하도록 태어난 엡실론들은 복잡한 일을 하지 않고 삶을 영위해도 되는 자신들의 위치에 만족하게끔 '세뇌'된다. 고로 모든 사람은 자신의 위치에 만족하며 행복한 삶을 누린다. 때때로 기분이 우울하거나 안 좋은 일이 있더라도 '소마'만 복용하면 문제없다. 그들은 다시 쾌활한 기분으로 돌아가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그러나 존은 여기에 당당히 맞선다. 그는 불행할 권리를 요구하고, 눈물을 흘릴 권리를 요구한다. 우리는 각자의 위치에서 그저 최선을 다하며 사는 삶이 미덕이라고 배워 왔고 주어진 삶에 만족하지 않은 채 위로 나아가려는 욕심을 가진 자를 사회 불순분자라며 매몰시켜 버리려는 대중적 특성이 있다. 죽도록 슬픈 마음이 들면 자살로 그 고통을 끝내버리거나, 약물 또는 기타 중독성 매체들을 의지한다.>
우리네 삶이랑 그닥 다른 점이 없어 보인다. 그런데 이를 그리 나쁜 생활 양식이라고 비꼴 수가 있을까 싶다. 어쩌라는 말인가 소설은 극적 요소로 비판을 인간의 감정에 효과적으로 침투시키게 할 수는 있지만 대안제시에는 부족해서 관심 가지 않는 장르 중의 하나다. 소설의 모형을 적용하는 것은 경제학 모형을 적용하는 것처럼 조악한 결론으로 이르게 한다. 단순하지 않은 사회를 저런 식으로만 재단하는 것은 썩 편치가 않다. 좀 비꼬았다. 뭐 일반적으로 다 인지하고 있을만한 주제인데 그냥 클릭질 하다 재미로 링크한다. 워낙 이쪽에 관심있고 심취했던 시절이 있어서 지금도 재미가 쏠쏠하다. 기회가 된다면 재미로 읽어도 되겠지만 과연 내가 읽을까 싶기는 하다. 그냥 리뷰 보는건 재미가 있구나! 우리 행태를 돌아볼 수 있게 만드는 수준일까 역시 책을 직접 읽지 않고는 평가에 한계가 있다. 읽지도 않고 끄적대기가 웃기다. 그냥 주제가 그럴듯 해서 써본다 솔까말 그다지 읽는데 시간투자 하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행복' 이 절대 목표인 양 떠들어대는 사회를 이데올로기화 하는 뉘앙스는 아주 마음에 든다. 관심있는 주제다. 과연 개인적 행복이 인간 행동의 바람직한 척도가 될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 있다. 원체 다양한 삶의 양식이 있는 것이지만 워낙 그렇게 떠들어대니 더 거부감이 생기고 과거 종교와 오버랩된다. 존재와 삶에 대해 인문학 서적을 한개도 읽지 않고 적정한 성찰은 커녕 하루에 10분은 생각할까 자기계발서가 난무하는 시대에 행동의 척도가 고딴 책의 처방이 된다. 적어도 그런 분들에게는 '행복추구' 의 문화와 '이득쫓기' 의 '강요된 인간성 및 "내재적" 자아' 가 '이데올로기' 로써 기능한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인터넷 상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공유하는 리뷰를 작성하기 보다는 개인적인 느낌을 싸지르는데 너무 집중한 듯 하여 그나마 영화에 대해 참조할 수 있을만 하고 공유할만한 영화 자체에 관련된 느낌들을 써보려 한다. 근데 더 다른 생각들이 나는게 사실이다 그리고 잡 생각이 많아지도록 하는 영화가 왠지 좋은 듯 싶다.

<경제라는 화두가 보수세력에 선점되어 있다. 사실 경제라는 화두는 진보세력의 씨앗이었는데도, 진보세력의 태동의 근본원인이 경제 논리였는데도 말입니다.>

블로그에 심취하기 시작한 나에게 블로그 써킹따위의 단어와 '이런 정보는 종이 신문을 통해 읽어야 제맛' 이란 대사는 조금 거슬렸다. 러셀 크로우가 'truth seeker' 라는 상당히 좋은 수사가 붙는 '기자' 역할을 하며 결국 진실을 찾아내고 신문사의 좋은 면을 비추며 결국의 반전 역시 희망찬(?) 내용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꼭 몸으로 뛰고 소식통과 쏘스를 통하여서만 찾는,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이 기사화 되어야 할까 싶다. 공공문서나 청문회 기록, 신문의 행간을 읽고 핵심을 비판하는 글을 쓸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stone 처럼. 1인 저널리즘과 블로그의 잠재력에 대한 논의가 많은데 그냥 무시하는 듯한 태도는 좀 거슬렸다ㅠ 보다 정보가 많아지고, 공개되어야 할텐데 아직 민주주의는 한참 멀었다. 예전에 재밌게 읽었던 기사를 링크한다. 진실은 중요하다. 진실을 '찾아내고' 그 진실을 '재구성 및 분석' 하고 견해와 주장을 하는 일도 중요하다.
'강준만과 미네르바... 그들이 주는 메시지'


군대조차 민영화 한다! _ 민간군사기업(PMCs : Private Military Companies)

아 일단 중간 부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잔잔한 긴장도 풀어주었던 '국방시스템의 민영화' 에 대하여 여론에게 주의 환기를 시켜준 것만으로도 꽤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소재가 아주 맘에 든다. 얼마 전 별로 긴 시간도 아닌 몇 달전에 큰 감명을 받은 것 중의 하나인데 특히 포인트콥이 군산복합체로서 정부 국방비를 많이 헤쳐먹는 중이라는 주제는 그야말로 낄낄댐의 대상이다. 중간에 누군가 러셀 크로우에게 이게 무슨 영화 드라마냐고 소리치는 장면이 있는데 참 재미있었다. 이미 다 알려질 대로 알려진 사실이고 극적 요소가 강해서 그런가 관련 음모론(?)들은 아주 풍부한 정보를 누출해주시고 계신다. 아마도 권력이 약간은 독점적 경쟁시장이거나 과점시장이어서 한꺼번에 힘을 발휘해 여론을 통제할 만한 빅 브라더를 만들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더 다른게 있어서 이걸로 퉁 치려는 수작인 것인가 혹은 그것들의 결말처럼 사람들에게 이런 거 없다 소설이다 라고 환기 하고 싶어서인가. 그 장면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 이라는 경제학 소설이 생각났다. 거기서도 중간의 반전은 꽤나 끝내줬다. 뒤통수 제대로 치는 느낌이 들었다. 음 암튼 기업의 비리 따위나 전쟁의 비즈니스적 성격은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사안이라 여론에 '큰 관심' 이나 센세이션을 일으키지는 못 하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한 아주 유익하고 흥미로운 링크들을 걸어볼까 한다!

전쟁은 비즈니스다 _ foog
전쟁은 무기만 파는 것은 아니다. 식품도 보급해야 하고 자동차, 약품, 화학제품, 옷가지, 의료 서비스, 정보기기, 정보 서비스, 건설 서비스, 상수도, 가스, 전기, 석유, 재건, 군사훈련 서비스, 이 모든 것들의 유통 및 물류 등등 아주 다양한 것들이 보급된다. - 심지어 매춘까지. 민간군사기업은 현실상 독과점 형태로 군산복합체들이 카르텔을 형성하면 충분히 수주가격은 부풀리고 비용을 최대한 낮추어 서비스의 질을 형편없게 하여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할 수가 있다. 민간군사기업은 국가가 아니기때문에 국가적 마찰을 피할 수도 있다. 헬리버튼 따위야 아주 유명하다!

미쳐가는 이라크에서의 민간군사기업 _ foog
<너희가 잉여노동을 착취하는 것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나는 다만 (나에게 또는 불특정 다수에게) 물적 풍요를 가져다주는 자본주의가 잘 굴러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한도가 있으니 그 한도는 지켜달라. …… 이러한 것들에는 예를 들면 독점금지, 아동노동금지, 8시간 노동, 노동3권 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적어도 이라크 전쟁에 뛰어든 민간군사기업에게만큼은 개 짖는 소리임을 알 수가 있다. …… 역시 KBR 직원이었던 Linda Warren에 따르면 궁전이나 각종 청사의 재건축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각종 문화재 및 귀중품을 훔쳐 eBay 에 팔곤 했다 한다. …… 그에 따르면 이라크의 업체직원들은 일종의 ‘매춘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매춘부들은 쿠웨이트에서 바그다드로 장갑자동차로 수송되었다고 한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렇게 매춘부 수송을 위해 장갑자동차가 이용되는 바람에 다른 미션에 있는 이들이 이 차를 사용하지 못해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_ foog

민간군사기업 : 전쟁의 새로운 구성요소
핼리버튼의 '누워서 떡 먹기'식 장사비법
또다시 드러난 핼리버튼의 추악한 거래
양심의 대차대조표 : 부외금융에 국방 민영화를 빗댄 것이 재밌다!

※☆☆☆☆☆미국경제의 또 하나의 복병, 이라크戰
한 해에 GDP 1.8%, 1천8백억$ 에다가 여기까지 3조$가 소비되었다. 이라크에는 군인보다 훨씬 많은 수의 민간인들이 파견되어 있다. 군수산업의 하청업자와 근처 자영업자, 노동자에게도 부스러기는 돌아간다. 그리고 이는 정치적 진보를 막는 기제로 작용한다.
미군에 쓰이는 돈은 경제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이다. 더구나 관련 원가는 터무니 없이 낮다. - 과다청구. 승수효과는 크지도 않다. 세금과 복지에 쓰여야 할 돈들이 적자로써 미국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안기고 있다.
<그렇다면 전비가 제대로 전쟁에 투입되고는 있을까. 오히려 그러면 안 될것 같은 기분이지만 말이다.> _ foog

http://foog.com/558
http://foog.com/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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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未完> 관련 잡담1

모순을 비판하는 자도 모순과 비판에서 썩 자유롭지 못하다. 복잡한 세상을 한 두가지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다. 과시소비를 비판하는 자들이 그 위치에 오를때 과시소비를 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집과 차에 자아를 투영시키는 사람을 비판하는 사람이 게임 캐릭터에 자신의 자아를 투영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다. 문학작품에서 그러한 문제를 비꼬며 인간소외를 언급하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새롭게 등장한 삶의 양식이라고 표현할 만한 새로운 일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 그가 사회에 문제됨을 찾기가 어렵다면 비판받아야 할까 그냥 인문학적으로(?) 빈정상한 것이 아닌가. 만약 그것이 결국 문제라 하면 그에 감성만 느낄뿐 마땅한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도 없는 것 역시 비판받을 만하다.


<未完> 관련 잡담2

아 재미가 있다 그리고 스포일러도 있다. 마지막이 마음에 들지가 않는다. truth seeker 라서 'truth'가 더 중요했던 기자의 입장은 이해가 가지만 일단의 시나리오가 마지막에 와서 기대를 져버린다. 'cliche' 를 피하기 위한 억지구성이었다는 느낌도 든다. 영화 중간의 내용들이 벌써 '진부한 편견' 따위가 되어버렸다는 말이 되는데 정말 기분이 묘해진다. 나조차도 많은 '부조리' 들에 저항하거나 비판, 행동하는 것보다 글이나 싸지르고 '새삼스러운 일들' 이라고 표현해버리는 모습이 또 묘하다. 1학년 국어작문 시간에 썼던 모순을 비판하는 자의 모순을 고발하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고발자는 모순이 없지 않고 모순은 다른 사회적 모순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으며 모순 자체가 기준에 의거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생각이 복잡해진다. 배설글로 반성하는 것이 '반성의 배설' 로 끝나버리고 나는 누군가가 말했던 일상 파시즘 속에서 살아간다. 영화에서도 말했듯이 블로그 써킹질로 생각있는 척하다가 돌아서면 쪼꼬릿을 먹으며 맛있다고 생각할 테고 앰네스티에 가입하며 1만원을 내는 것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계정 등록을 2만원에 하며 더 큰 효용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망설임을 가졌다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안하며 유교적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말이 잇는 것 같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범죄다. 늘 행동하고 싶어하지만 고종석씨의 글을 읽으며 감탄하는 척 하고 '개인주의적 진보' 가 아주 참신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며 운동권을 비판하고 어느새 내 정치지형은 보수로 간다. 물론 보수와 진보를 그렇게 나누는 관점이 정책을 떠난 색깔론으로서 그다지 실질적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양비론따위는 역겹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관점을 명확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윤동주 시인이 자신과 최후의 악수를 한 것처럼 나도 악수를 해 나갈 것이다. 개인주의적 연대를 하지만 물론 정치인 처럼 악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것을 '권력이 경제적 헤게모니를 잡았다.' 라는 입장으로 정당화하는 것이 그저 '정당화' 로 치부되고 행동하는 양심과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분열한다. 그래서 헤게모니는 무섭다. 개인의 효용수준까지 문화적 배경으로 만들어버리고 벌써부터 '효용' 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스스로의 양심을 합리화 시키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의 행동이 정치 및 여가 영역과 경제적 영역으로 철저하게 분리되고 그것은 당연시되거나 '또' 권력의 조장이라 '까거나' 한다. 물론 행동의 합치는 '어렵다' 고 말한다. 그것 부터가 '경제적 헤게모니' 가 아니냐고 생각한다. 자발적 복종이라는 개념은 유통기한을 지났다. 더불어 알아도 행동하지 못하는 경제적 헤게모니도 나에게만 신선했을 뿐 사실상 유통기한을 한참 넘긴 단어일 뿐이다.


앎이 효용구조를 바꾸는 경우
효용구조의 변화가 행동의 변화에 큰 탄력성을 갖는 경우
변화의 전위가 된다.


헤게모니는 주로 문화적 관점에서 쓰이고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강제' 라는 단어가 쓰이는 것을 알았다. 이런 식으로 공부해 나가는 것이라 스스로를 위안한다. 그렇다고 그런 관념들에 패배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무기력증을 보이는 것은 한심한 자화상이고 그다지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내 행동이 자기 모순을 가지는 것이 '효용의 구조' 에서 나왔다면 그 효용의 구조를 바꾸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진심' 에서 비롯된다. 바꿔지는 것이다. 앎과 언론, 각성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알아도 행동치 않는 이들을 비판해서는 똘레랑스라 할 수 없다. 앎이 효용구조를 진심으로 바꾸고 그 이들이 행동함으로서 변화의 전위대가 되는 것이다. 어쩔 수가 없다 똘레랑스를 진짜 똘레랑스로 만들려면 전위대의 존재와 전략을 인정하는 수 밖에는 지금 생각나는 것이 마땅찮다. 시간을 가지고 점진적 개혁을 꾀하는 것이 나의 '주의' 이고 다양성을 존중하여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효용구조가 바뀌지 않거나, 효용구조가 바뀌어도 행동하지 않는


비꼼이 어울리고 모순되지만 어차피 인간은 모순이고 변화하지 않는가?

하지만 결국 내가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고 그 곳에서 멈추었기 때문에 이런 관용이 필요하다 말하고 나의 마음 편하려고 정당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서 행동하는 이를 더 존중해줄 수밖에 없다. 행동하는 이가 계속 행동한다면 좋은 일일테고 행동하던 이가 변심한다해도 그것을 탓할 만한 자격이 되는지 의심해본다. 아쉬운 일이고 비판받거나 냉소를 받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행동하지 않는 이보단 낫지 않은가? 비꼼이 어울리고 모순되지만 어차피 인간은 모순이고 변화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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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낸 세금으로 당신들을 공부시켰다" - 모두가 승리자 되는 복지제도 : 그런데 솔직히 가장 짜증나는 읽을거리는 편파적인 견해를 담은 문장들이다. 소득세를 어떻게 그 수준으로 높일 수 있었는지에 대한 과거 - 스스로 공부하자 - 와 반대파의 비판인 고실업률의 실상은 전혀 담고 있지 않다. 하지만 높은 누진세가 복지로 간다면 노동시장에서 유연성이 증가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의 문장은 꼬꼬마적인 나의 입장에선 새로웠다. 실업수당 등의 혜택은 물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거란 기대감은 구조조정에 대한 저항을 낮추고 기업의 인적 배분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메커니즘인데 신선하다. 복지 서비스가 일정 수준이 되니 사람들의 저항이 낮다는 말을 하는데 구조가 유지되고 선거를 통해 계속해 사민당 정부가 집권하는 것을 보면 틀리기만 한 말은 아닌 것같다. 마지막 문단은 아주 재미있는 발상이다. 제목과 같다 '우리들이 당신들을 공부시켰다'.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 '입시 과열'이 안 생기는 이유 : 누진과세는 세전 소득의 불균등을 세후 같게 만든다. 따라서 직업에 따라 실수입의 차이가 존재하기 어렵다. 대졸자보다 직업학교를 거친 후 바로 취직을 하는 것이 빠른 사회진출을 의미하고 차라리 경제력이 우월할 수조차 있다. 대학을 갈 필요가 없으니 대학이 수익성을 낼 수 없고 대학을 갈 필요가 없는 이유는 누진세가 기여한다는 메커니즘이 가능한지 생각해본다. 물론 다른 것도 있으리라 의심하여 본다. 하지만 세금이 높아질 수록 고리스크가 있는 사업에 투자되지 않고 경기 침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현대 사회는 더 이상 산업적 투자를 하는 산업 자본보다는 유동화가 쉬운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금융자본이 대부분이므로, 일단 돈이 있다면 고리스크와 높은 리턴의 투자를 감행한다는 시장을 생각하는 것부터가 억지스럽다. 더불어 리스크의 감수와 투자는 민과 관의 관계가 돈독할 때 민주적인 의사 위에 정부가 맡을 수도 있다.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 [<프레시안> 창간 7주년 :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협동 (下) : 사회적 구성주의를 설명한다. <'사실(fact)'이 하나여도, '지식'은 학습자의 수만큼 다양할 수 있다. 치열한 경쟁은 모방하는 능력을 키우는데는 유리하지만, 창조성을 소모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타국의 지식을 모방하고 전자본주의적 단계에서 산업화를 위해 과학기술의 발전을 도모해야 했을때 이루어진 공교육제도로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나아갈 수가 없다. 한국의 경쟁력이 가장 약한 분야로 교육을 꼽은 것은 엊그제의 일이 아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공교육제도는 일제시대 군국주의의 잔재까지 남아있다. 기본적으로 '평가'와 '시그널' 그리고 '걸러내기' 작용이 '누진세로 인하여' 어느정도 필요없어진 상태에서 교육은 돈과 명예같은 인센티브가 없이도 창조성을 낳고 새로운 시대를 이끌 준비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세금이 낮아서(?) 직업에 따른 빈부차가 크고 그에 따라 '평가'와 '탈락'과정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역시 그에 더불어 국가 경제에 이득을 가져올 수 있는 '학교에서의 창조성 학습 강화' 정책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평가와 탈락의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입시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의 요구에 밀려 '학교에서의 창조성 학습'은 이루어지기가 요원하다. 일단의 직업적 평등이 이루어져야만 '경쟁'의 의미로서의 교육제도의 변화를 도모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직업적 평등이 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초래한다는 주장, 힘든 일에 대해 물적 보상이 미치지 못한다면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을 것이란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타파해야하는 것인지가 다음 물음이다. 유아적이고 대답할 가치가 이미 유통기한을 넘어서버린 논리이다. 논리가 현실을 설명할 수 없을 때 궤변이 된다. 궤변과 논리는 종이 한 장의 폭과 같은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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