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임금제 및 스웨덴 모델 : 인구, 예산문제는 언급하지 않고 추상적이고 막연하며 어디에도 구체적 실천을 요구, 및 계획하는 문장은 없다. 구체성이 없고 해당 현상의 역사적 원인과 현재 메커니즘을 설명치 않는 글의 전형이다. 연대임금제를 소개하지만 연대임금제가 도입된 배경의 설명이 부재한 것이 아쉽다. 연대임금제를 실시하면 임금깎아 돈 버는 한계기업들이 퇴출되고 사회적으로도 선순환이 가능하다. 물론 해당 기업과 노동자가 빠른 시간내에 생산적이고 효율적으로 새로운 산업에 재배치되어야한다는 전제가 있다. 노동자의 단결이라는 현실부터가 막막한 대한민국의 사회에 해당모델을 도입하기엔 적잖은 무리가 있다. 동일임금이 기업 수익성의 높낮이와 노동자의 기술력 우월에 관계없이 작용하는 사실이 재벌을 탄생시켰다고 설명한다. 허나 노동력의 우월성이 저평가받는 것은 타기업의 퇴출로 상쇄돼며 재벌의 문제를 조명하기엔 부작용이 가소롭게 느껴진다.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30071217123123&Section=01 탈정치성이야말로 가장 노골적인 정치성이기 때문이다.

뭐 별로 의미있지 않을 수도 있지만 재미가 있다. 근로자의 날에 개장하는 캐리비안 베이와 경향신문을 비롯한 주류 언론의 해당 사진 공개다. 굳이 날이 겹치고 3S같은 낡은 종류의 수법을 연상하는 것과 시선을 끌려는 수작이라 생각하는 것은 너무 찌질한 태도일까 궁금하다.

"'착한 정부'는 '코뮌'에서 나온다" : 글 초반 모델의 피상적 역사를 다룬 부분은 그다지 영양가있지 않다. 하지만 낙후된 경작지와 지리적 위치상 봉건제의 영향을 덜 받은 역사를 조명한 것은 마음에 든다. 자영농의 높은 국가내 비중과 신교의 보급으로 인한 문맹률 타파와 지방결속을 코뮌의 오랜 전통유지의 배경으로 꼽는다. 지방자치가 강력하고 세금의 납부와 쓰임이 자치성이 강하단 특징도 지적한다. 그러다보니 정치에 대한 관심이 높다. 살갗에 닿는 정치의 향기를 생활 속에서 맡을 수 있고 노동자는 파업을 하는 대신 끊임없이 책을 읽는다.
<지역마다 생겨난 노동자 코뮌의 최대 관심사는 '교육'이었다. 노동자가 지방자치 속에서 실력을 발휘하고, 더 나아가서 중앙 정부를 운영할 수 있으려면 정책을 이해하고 설계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래서 노동자 코뮌은 '인민의 집'을 곳곳에 건설했다.>
<……노동자들은 지적, 문화적, 도덕적 우위를 통해 새로운 권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민당과 노조 및 지방시민들의 구체적 협력 메커니즘을 다루지 못하고 겉핥기만 한 점은 아쉽지만 그래도 화두를 던졌다는 점은 높이 평가하고 싶은 기사다. 비교정치 및 세계적 정치제도역사를 더욱 더 공부하여 지역마다 정치형태가 달라진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고, 그가 현재 갖는 의의와 함께 국내에 시사하는 실천적 대안을 더 알고싶어지게 한다.

실존이 구토를 낳지 않는 시대에 인간은 도피하고 쾌락을 찾거나 사회참여로 정체성을 가지려 하는 길 이외에 다른것이 있는가 궁금하다. 인문학적 소양이 매우 짧은 지라 어디서 주워들은 것들을 허접하게 조잡하게 끼워 맞추는 일밖에는 못하고 있다.
TV가 실제고 당신들의 인생은 가상이라고 믿기 시작해요. TV에서 입는 것처럼 입고, TV에서 먹는 것처럼 먹고, TV처럼 생각하고 사는 것은 집단 정신착란입니다. 우리는 실존인가 허상인가. TV는 기준이고 우리 삶은 기준에 맞춰집니다. 이거는 이 동영상에도 적용되는 말 아닌가 싶다. TV라는 단어를 동영상으로 바꾸기만 하면 바로 성립된다. 동영상을 비판하는 것이 비판을 위한 비판인가 의심스럽다. 허나 비판받지 않아야 할 것은 없다. 그야말로 헤게모니가 되어버릴 테니까 말이다. 각종 미디어와 교육, 책과 정보와 자료들을 수습하고 자율적이고 주체적인 자신만의 생각을 그리고 행동을 갖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무기나 석유회사에 자금을 공급한다거나 원재료를 공급한다는 측의 간접적 지원이 이루어졌다? 알아야할 필요가 없는 것들은 알려주지 않습니다. 지금 한국에서도 아주 익숙한 정치경제적 행태이다. 미디어를 통한 단순생각뿐 아니라 현실인식은 주입된 것이다. 분열도 조장된것이다.
찾을 수 없는 것을 찾다. 테러와의 전쟁은 제목부터 성립이 불가능하다. 이길수 없는 지속가능한 전쟁을 일으켜 자치와 자유를 억압한다. 헤게모니를 지배하고 자발적 복종을 하도록 만든다. 어디에도 강요는 없다. 소유나 존재냐 개인의 실존으로부터 인간을 분리시키는 소유와 소비적 삶의 양식은 누구나 잘 알고 있는 바이다. 하지만 인간의 실존을 실체와 분리시키는 것은 종교, 인종, 계급과 문화등 다양한 분리주의가 있다. 그들은 정체성을 강요한다? 스스로 무언가 되고자 하게 만든다 원하게 욕망하게 만든다. 기준을 낳고 우월감과 열등감을 낳고 경쟁과 쳇바퀴를 낳으며 모두 길들여지고 당연하게 생각한다. 실존을 받아들이는 이는 없다. 아주 거시적인 생각이긴 하다. 쉽게 생각을 주입시킬 수 있는 타자화는 분열과 전쟁을 낳는다. 아니 전쟁을 낳는 것은 다른 요소일뿐 전쟁을 차라리 당연한 필요악으로 생각하게 만든다. 사실 이상주의적인 문장이긴 하다. 우리 사회는 범죄로 가득차 있을까 범죄를 만드는 것이 차라리 사회는 아닐까 범죄를 사후 감독 하는 것보다 사전 예방하는 일이 어려운 일일까하는 생각은 해볼만 하다. 분리시켜 보기가 편견을 낳는다는 사상에 대응하는 쉬운 방법은 편견이 아니게끔 사실을 조장하는 것이다. 이상주의적이다 사람까지만 분리를 철폐할 것인가 생명체와 식물에게까지 주술적인 감정을 가질것인가 지금에 와서는 실천불가능한 사상들이다. 내이름은 그저 이름일뿐 나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보다는 인간이고 모두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인지시키려 하나 역시 이상주의적이다. 체제를 각성한다고 되는 것은없다. 좀 심하게 말하면 군산복합체는 때가되면 차라리 다른 산업들을 인수할 것이다. 조작된 감정을 조작이라 말하는 것은 어렵다. 조작자가 거부감을 가짐은 물론 당사자 역시 싫어할테다. 욕망과 삶의 형식들은 개인에게 전적으로 달려있고 각성과 함께 욕망과 삶의 양식을 바꿀 수 있다는 말은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경제력과 소비 및 소유의 포기는 개인에게만 달려있지 않다. 보수주의자들이 가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지켜야할 것이 있다면 사람들은 저항하지 않는다. 잠자코 지 챙길 것만 챙기게 만들기 프로젝트! 지켜야 할 것이 자신 이외에 다른 것이 생긴다면 사람들은 잠자코 있는다. 그래서 삶의 양식을 그렇게 만들어왔고 동성애를 금지했고 빚과 법을 만들었으며 예술과 문화적 과자와 마케팅을 만들었다. 선택은 전적으로 개인에게 귀속된 시대가 아니다. 그래서 개인적 지위를 갖는 것은 중요하다. 주체적 생각을 갖는 것은 중요하다.
언론과 교육이 편파적이고 정치적이며 권력에 지배받는다는 생각은 이제 그다지 특별한 정보가 아니다.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알아도 바꿀 수 없도록 빚과 법과 경제력으로 개인들을 옭아 매어버렸다. 그리고 역시 국제적인 기준에서의 착취는 알기 어렵다. 해당사항을 알아도 우리는 여전히 오늘도 문화 과자를 섭취하며 그저 아는 것에 끝나는 생산요소일 뿐이며 공정무역을 알아도 공정무역 초콜릿을 사는 이들은 드물다. 공정무역은 알아도 다른 국가의 일상적 인권침해는 아무도 모르고 알아도 잊혀지며 지속적으로 안다해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리고 끊임없이 자극적인 것들이 모두를 유혹하고 있다. 수구권력들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체게바라 티셔츠는 놀이일 뿐이다. 체게바라는 장식이고 산업일뿐이다. 자본축적론은 매우 매력있는 전개인 듯 싶다. 그리고 난 이 글이 끝나면 게임을 하며 유흥에 젖는다. 나는 과연 조종되고 있는것인가 헤헤. TVTVTV PROPAGANDA PROPAGANDA = AMUSEMENT PARK = TIME KILLER
제목을 짓다 생각했다. 나는 생산요소조차 되지 못하는 비경제활동 인구구나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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턱 괴고 서핑하다 일전에 보았던 시대정신 동영상을 보았다. 처음 보았을땐 꽤나 충격적이었고 결국 내가 내공을 기르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는데 일조한 바가 있다. 지금에야 다시 보니 허점들도 많다. 역사적 언급들이야 딴지를 걸 수 있는 입장이 안되지만 빚을 갚는데 더 많은 빚을 창출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은 화폐의 빚은 일괄적인 시간에 갚아질 필요가 없다는 점과 다양한 화폐공급 경로를 무시하는 발상이기 때문에 조금 극단적이다. 하지만 역시나 극적인 효과를 준 동영상은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재미있기도 하다. 언젠가 2페이지만을 읽은 뒤 졸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푸코의 책을 교수님의 말씀을 빌려 인용하자면 마치 사회는 감옥과 같다. 사람이 가지는 생각이라는 것이 본래 주체적이기 어렵다. 미디어는 물론 정치에 영향을 받은 교육 및 문화 등에 영향을 받는데 결국엔 사회의 정치 및 경제적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는 생각이 어디서 왔는가하는 각성을 가지게 되어도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사회 시스템과 죄수복을 입고있는 자신을 발견할 뿐 어떻게 할 도리가 마땅찮다는 것이다. 경제력이라는 쇠사슬로 묶여버린 현대 도시인들에게는 지속적인 소비가 욕망되고 그를 위한 생산이 불가결하며 간간히 얹혀지는 빚이 그의 '어쩔 수 없는 노동' 을 강요한다. 상당히 세련된 생각이기도 하고 사실이라면 상당히 세련된 전략이기도 하다. 굳이 음모론을 들먹이고 소수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극단적으로 생각치 않아도 불균등한 구조와 계급적 이해가 걸려 쳇바퀴가 되어 돌아간다.
지금에서야 열폭증세였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과거 생각대로 산다는 아주 매력적인 문장을 공격했던 내 감정이 바로 이 곳에 기반되어 있다. 그놈의 생각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나온 것인가하는 성찰이 없이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비슷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감정과 느낌, 만족 및 쾌락과 행복에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모습이 지금 읽고 있는 책과 함께 오버랩된다. 세속적 행복추구가 최선의 삶이라는 식의 문화적 감성 역시 자본주의적 시대정신이나 과거 기독교적 신앙과 다르지 않은 체계적 기만일 수가 있다는 이야기다. 도대체 나의 행복과 감성이 왜 그것이 반응 하는지 인문학적 회의감 없이는 우리 모두 정치 경제적 감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모든 것이 돈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는 진부한 사실 때문이다. 회의감을 가지고 진짜 나로부터 시작해 비판적인 자아부터 주체적인 사상을 가지고 생각을 발전시켜 나갈때 비로소 생각대로 사는 것이 의미있어지는 것은 아닌가 싶다. 물론 강요할 생각은 없다. 그보다 중요한 것이 민주주의와 존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적 가치에 의해 강요될 수 없는 생각들은 경제력에 억압받거나 혼자 표류하게 되고 ,자본주의적 과자를 열심히 행복하게 섭취하는 기만당하는 노동자들로 가득찬 '생산요소' 들은 행복하게 잘 살아간다. 어떤 이는 이야기한다 행복을 느끼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신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사는대로 생각해버린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생각대로의 삶이 사는대로 사는 삶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궁금함을 남겨본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아무리 각성하더라도 왠만하면 그냥 쳇바퀴의 한 요소가 되어버린다. 가장 무서운 것이 그것이다. 가장 세련된 것이 그것이다. 이제 앎과 정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개인주의와 함께 생활과 가정에 '충실' 해야만 하는 도시인들은 알더라도 그저 기존의 양식대로 살아가는 수 밖에는 없다.
그리고 서핑중 '우리' 라고 지칭한 이들을 타자화하는 구역질 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우리' 를 타자화하며 비난하며 비꼴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것이 '우리' 이고 나이고 너이고 나의 가족, 너의 가족과 나와 너의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어감을 붙일 생각은 없다. 잘못은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변화해야할 주체는 잘못이 없는 자들, 그들이 주체가 되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은 새삼 당황스럽다. 나 역시 '생산요소' 가 되어 행복하게 잘 살아갈지 궁금하다. 흔히 거부감 없이 쓰이지만 자신 혹은 친분이 있는 자에게 적용하며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단어이다. 그리고 꽤나 기분나쁜 단어이다.
아침부터 일어나서 머리아픈 글을 읽었다. 전문용어들이 날라다녀서 너무 힘들었다. 링크를 타고 계속해서 관련글을 보다보면 가장 우선적으로 드는 생각이 '과연 필요한 사업이었나' 라는 의문이었다. 리스크를 정부가 짊어지고 벌이는 개발사업인데 기존에 前자본주의 단계와 달리 확실한 수요와 사업성이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겨우 7%밖에 되지 않는 기존 예측에 비한 이용자 수치를 볼 때, 링크에 걸린 전술적인 고려로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하여도, 사업손실을 정부가 떠안는 형태는 심해보인다. 개발이 상당히 이루어진 상태에서 손실을 감안하면서까지 필요한 공공재였는지도 의문이다. 사업성을 심사한 회사가 해당 사업의 수익과 연동되어 수수료를 받는 구조가 아니라면 과연 제대로된 심사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애초부터 민자회사들은 그냥 참여해버리는게 무조건적으로 유리한 형태인걸 보면 한숨이 나온다. 시장과 공동으로 추진할 사업이라면 손실역시 공유해야하는 것인데 저런 구조라면 기업가정신이 튀어나오기는 커녕 먹튀본능만 불사르는 꼴이다. 애초에 할부금 쥐어줘가며 벌여야 했던 사업인지도 의문스럽다. 이 역시 푸그님의 견해처럼 국유화가 타당해져버린 구조인데 어찌할 도리없이 정부가 손실을 떠안는 상황은 어디서 많이 본 상황이다. 금융계만 그런 것이 아니라 건설 산업계도 리베이트같은 낡은 수법 이외에 이런 식으로도 부를 창출할 수 있는게 신기하다. 어차피 비지니스란 상대가 누구건 빨아먹으려는 본능에서 비롯된다. 따지고 보면 문화적 과자를 비롯한 각종 마케팅도 근본적 필요에 기댄 것이 아닌 스스로 수요를 창출시키려는 속셈의 일환이 아닌가 말이다. 이득은 민간이 보고 손실은 공유하는 상황은 '정의 상' 용납되기 어렵다. 국익에 중요한 사업이 개인의 손에 매달려서는 안 되기 때문에 시장으로부터 제외되어야 하는 상황이 있는 것이다. [제3의 길, 앤서니 기든스, p47] 애초에 계약이 잘못 되었다. 있을지도 모르는 손실을 감내하고서라도 투자에 나설때 비로소 사업성을 측정할 수 있다. 잠재적 손실가능성이 있음에도 투자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은 시장의 입장에서 역시 자원이 비효율적으로 배분되었기 때문에 비난받아 마땅하다. 진정한 시장주의자는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시장이 옹호되는 이유는 효율적 자원배분에 최적인 체제이며 그가 사회적으로 및 개인적으로 효용을 극대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경제학적이고 추상적인 근거지만 이를 내세우는 시장주의자는 없다. 다만 자유지상주의자나 자본주의자가 활개칠 뿐이다. 그나마 가끔의 좌파의 탈을 쓴 우파로써 기능하는 정치세력들 및 어정쩡하게 제3의 길을 걷는 이들이 시장의 순기능을 외치지만 모호한 사상에서 끝나고 만다. 이제나 저제나 결론은 그저 자본가만 좋은 일 또 하게 생겼단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 결론을 내어보니 이건 뭐 케이스만 다를 뿐 새삼스러운 일이 되어버렸다.


제 3의 길 _ 앤서니 기든스
한상진, 박찬욱 옮김 / 생각의 나무


글을 쓰고 싶을 때 써버릇하며 후에 고치고 고쳐 완성시켜나가는 빌드오더를 타자고 결론내렸다. 쓰지않고 쌓아두는 것보다는 그때그때 쓰고 싶을때라도 써 나가면서 소화불량을 막고, 꾸역꾸역 대다가 머리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작문 자체에 의의를 두고 지금은 글쓰기 자체도 무작정 해대어 다작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했던 책이 아니라 실망치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테다. 언젠가 학교 도서관에서 재미로 보았던 그 책이 아니었다. 아마도 제3의 길 따위는 없다고 말하는 책이었던 것 같은데 왠지 몰라도 그냥 재미 있었다. YES24에서 대규모로 세일을 하길래 질러버린 약간 충동구매적 소비의 대상인 책이다.
별다르게 포스팅할만한 거리는 찾지 못하다가 문득 우리 나라의 정치지형에 관해서 생각이 들었다. 뻔한 소리인지 모르나 나에겐 처음 든 생각이라 나름 신선하다고 생각되었다. 내공을 기른다 생각하고 뻘글도 포스팅하는 나의 습관의 효시가 되는 포스팅으로 의미를 삼도록 한다. 지금의 한국 정치구도는 비록 '주댕이 좌파' 라고 할 지라도 민주당이 좌파(?)의 이미지로 은연중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온 바가 있다. 물론 자유선진당이 한나라당의 표를 갉아 먹어준다면야 바람직하지만 지금으로선 민주당이 여타 진보당의 표를 먹는 케이스가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단순히 당에 대한 지지의 태도를 떠나 보다 올바른, 바람직한 정치지형의 정립이 새롭게 요청되었기에 그리고 필요한 수순이기에 표의 분산은 지금 변화가 바람직한 상태이다.
주댕이 좌파들이 자신의 정치지형을 명확하게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가 있다. 더 이상 낡은 중립, 온건 좌파의 이미지를 버리고 확실하게 보수의 이미지를 내세워야 한다. 시대는 변했고 지금의 유권자들에게 역사 속의 민주투사의 이미지를 가지고만 호소해서는 대한민국에 도움될 것이 하나도 없다. 어느모로 보나 민주당은 보수세력이다. 자유시장에 긍정적인 태도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보수라고 불릴만 하다. 좀 과격하게 말한다면 더하여 국가의 통제에 거리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차라리 'LIBERTARIAN'이다. 시대의 정신자체가 신에서 시장으로 바뀌며 맹신받고 있을 때 맹목적으로 시장을 숭배했다는 비판도 가능하지만 박정희의 그늘을 꼽는 이들이 가장 많다. 박정희 자체가 권위주의자 였기 때문에 온전히 민주당의 정치지형은 자유주의를 지향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국가의 역할에 명확한 의미를 제공치 못하고 FTA로 정점을 찍어 차라리 자유지상주의자가 되어버린 점이다. 좌파에게는 우파로 비치고 우파에게는 좌파로 보여지는 지금 민주당의 상황을 관점의 차이라는 미시적 문제로 돌려버리면 한국 정치지형 변화에 답이 없다. 어중이 떠중이 정당과 이념이 아닌 확실한 자리매김을 해버리고 누구에게나 같은 시선으로 보여질 수 있는 정당이 되야 한다. 언어를 선점하는 것은 중요하다. 한국의 진보들은 단어를 이끌어 가야한다. 내 속내를 '아싸리' 드러내어 보자면, 민주당이 진보신당의 표를 먹는 구도는 지양되어야 한다. 대중에게 보수로서 각인되어 차라리 '아싸리' 우향우해서 기존 보수(?)당과 겨루어야지 어정쩡하게 '중립적 좌파'의 지대에 남아서 갈곳없는 표를 붙들어 놓는 것인 '민폐'다.
물론 이는 힘없는, 메아리도 없는 찌질한 당위성 주장일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말로라도 좌파라고 하는 '민주'당이기에, 아직 포기의 대상이 되는 '막장 정치세력'이라고까지 보여지지는 않기에 그래도 그래도 '해야 한다' 따위의 술어를 쓰며 당위성을 주장하여 본다.


흥미로운 관점이 많아서 링크를 걸려고 했으나 다시 훑어보니 평범한 글인듯 해서 넘기려 했다. 그러던 찰나에 발견한 문장이 꽤나 괜찮았다.

허상으로 공급되는 실물과 불태환되는 종이화폐의 범람과 함께 발생한 무분별하고 무가치하며 소모적인 문화 과자에 대한 소비를 빗댄 문장으로 풀이하기에 매우 적절한 문장이다. 화폐단위가 커진다는 말을 인플레이션이라고 지칭하는 것 같은데 화폐의 가치가 낮아지는 것이 현실과 다르다고 말하는 것을 보니 역시나 게시판의 특성상 공들여 쓴 글은 결코 아니다. 인플레이션의 긍정적 효과와 디플레이션의 부정적 효과를 간과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인플레이션은 무조건 나쁘다는 인식이 있는 것 같은데 결코 옳지 않은 생각이다. 화폐전쟁이 처음 접한다면 충격적인 내용이 가득할테지만 내공있는 자라면 굳이 언급할 만한 수준의 책은 못된다고 생각할 것이다. 더불어 불태환 성질을 가지고 있다고 종이 화폐를 무조건 매도하는 것은 화폐라는 상품의 교환기능 등의 성질을 역시 간과한 것이다. 아무튼 별 의미있는 글은 아니지만 저 문장은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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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인 85호 : 시장이라는 유토피아가 무너진 날
노동시장 유연성을 주장하는 경제학과 교수에게 종신고용을 포기하라고 말하면 즉시 낯을 붉히며 짜증을 낸다. - 재밌다! 미 금융제도가 언제부터 시장, 자유주의적 체제였던가. 하나하나의 예를 드는 것이 어려울 따름이지 모두가 알고 있는 상식상 미 금융계는 스스로도 스스로가 시장, 자유주의적 체제라고 생각치 않을 것이다. 회계기준 완화 사례는 또 하나의 '재미있는', 새삼스러운 사례일 뿐인 현실이며 그 현실도 우습다. 골룸과 스미골의 비유가 매우 웃기다.

더불어 85호에 GMO와 광우병에 관한 기사가 있는데, 식품은 '배타적 소비'가 어렵다는 문장이 간결하고 좋다.

시사인 85호 : 휘청거리는 일본 경제, 대한민국과 닮은꼴
환율의 변동은 일국 이상의 관계에 변동을 가져온다. 플라자 합의로 동남아와 한국이 이득을 본것과 같다. 일국의 환율변동이 가격경쟁력을 통해 타국의 경제에 영향을 준다. 민감도가 높은 환율관계가 있게 마련이다.
수출 등 요소가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과 GDP의 성장에 주는 기여도는 다르다.
수출의존적 구조와 미 침체라는 누구나 알고 있는 메커니즘의 좀 더 세부적인 면을 조명하는 것도 마음에 든다. 수출의존적 설비투자와 수출의존적 산업의 영향력 계수가 높다는 점을 거론한다. 수출에 기대어 투자를 하였고 타 산업에 영향을 미치는 바가 크니 단순 수출의 감소는 설비투자 감소는 물론 잉여생산능력을 낳고 타 산업의 침체까지 낳는다.
민간의 복지성 소득이 성장을 촉진할 수 있으며 경기 침체시 변동률을 낮춘다는 뉘앙스의 말을 한다. 노동시장 유연화가 민간소비를 침체시켰다는 것이다.


원달러 환율하락은 원화강세를 의미한다.

1. 일본 대비 수출경쟁력 하락으로 인해 수출기업 매출악화가 야기되고 해고까지 발생할 수 있다.
2. 원화의 강세와 주가의 상승은 국내상륙 외국인 투자자에게 빠져나갈 수 있는 호기를 제공한다.

참 다양한 관점들이 많다. 하지만 외환에 관하여 문외한인 나로서는 USDJPY의 움직임과 USDKRW의 움직임을 의미있는 수준에서 비교분석하기 어렵다.
단기적인 의미에서 자본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분석가능한 배경지식도 없고 알고 있는 수단들도 없다. 외인들의 한국국채 단기물 위주의 매입전략은 고금리를 노리고 추후의 원화강세를 통한 수익률 노리기로밖에 풀이가 안된다. 수준낮은 나의 생각으론 역시 대다수의 말마따나 한국정부는 그저 노리개감으로 비춰지는구나 싶다.


1. 중국은 의도적으로 내수를 비활성화 한다.

중국의 외환보유고가 상당함에도 인플레이션 압박이 덜하다고 주장한다. 빈부격차로 인한 내수부진을 그 원인으로 지목한다. 중국 공산당이 개인 영달에만 힘쓸 뿐 극빈층의 생활 개선에는 소극적인 이유를 인플레이션 압박에서 찾는 모습이 색다르다. 1차형 산업의 수출을 위한 극빈층은 일부러 양산되거나 방치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논리를 나아간다면 극빈층의 생활이 여유로워질 경우 고등교육이 이루어짐과 함께 중국 공산당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가능해질 거란 예상 역시 있지는 않는가 생각해본다.

임금 상승은 자본 도피와 외환 보유 감소를 야기한다.

장기적, 역사적으로 임금과 물가의 상승이 국가의 성장 주도권을 박탈시키는데 기여를 해온 바가 있다. 기술의 발전과 극빈층 생활개선이 의미있는 상관관계를 이루는지도 의문이다. 내수진작은 미국의 소비력이 감소하는 세계적 경제침체에 대비해 히든카드로 아껴둘 수도 있다. 외환보유고 자체가 인플레이션 효과를 가진다는 점을 감안할때 극빈층을 이용해 상충효과를 누리고 임금에 경쟁력을 갖도록 한다는 점은 가능한 생각이다. 유효수요가 남아있다면 '시간'이 문제가 될지언정 내수를 활성화하고 침체를 상쇄시킬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은 한국과 달리 '극빈층'이 많으며 정치와 행정이 보다 일관적이고 빠를 수 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럴듯한 시나리오같다.

소비력이 기반되지 않고 국제적 패권을 어떻게 달성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하고 그것이 위안화의 위상과 어떤 연관관계가 있을지 알고싶다.

역샌드위치라는 말에 대해 턱 괴고 클릭질 하는중 우리나라 역시 중국의 상황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주댕이좌파와 수구세력이 정치권을 장악한 상황에서 수출로 벌어들인 돈이 투자, 고용, 임금으로 향하리란 생각은 택도 없다. 주댕이좌파에겐 해당 사상과 논리 자체를 기대하기 어렵거나, 정치적 역풍상황을 꺼려하거나 성장에 관한 전략이 애초에 없기 때문이다. 수구세력이라면 차라리 부동산에 투자하거나 '각종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것이 수익을 내기 쉬운 상황일테다.
기존의 한국은 지리적, 이데올로기적 이점과 함께 개도국으로서 투자여지가 많다는 사실과 저임금의 상황에 있었다. 더불어 정부에서 금융을 도맡아 가능한 리스크를 떠안고 기업가 정신을 고취시켜 주었으며, 화폐의 배분을 - 정경유착에 대해, 최고의 효율성을 가질 수 있는 기업이 로비를 하는 것이라는 주장은 신선하였다. 허나 그 규모가 커질수록 기회가 불균등한 구조를 낳고 효율성은 떨어져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을 기대하기 어렵다. 기업끼리도 빈부격차가 생기기 때문이다. 더불어 자본의 힘이 정부보다 강한 상황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억지스러운 생각이었다. - 하였다. 시간과 함께 이점들이 끝나고 성장동력을 찾기 쉽지 않은 시점에서, 어중이떠중이 같은 상황을 피하고 유럽의 상황을 본따, 분배가 성장을 촉진시키도록 하는 모델이 유효할 수 있는 상황이다. 내수를 피할 생각을 말고 내수를 아예 진작시켜버려야 한다. 물론 그러기 위해선 지금의 정치권에 재편이 필요하다. 하고 싶은 말이 그거였다. 기존의 정치권에는 기대할 수 없다. 보다 평등한 분배 자체가 효율적인 상황에서 멍청한(?) 주댕이좌파와 고딴 변화는 싫은 수구세력에게 있어서는 어떠한 성장전략도 기대할 수가 없다. 여러번 생각하지만 지금 한국의 희망적 정치세력에게 필요한 것은 '성장전략'이다.


편하게 편하게 쓰려고 해 버릇하는게 좋겠다 싶다. 뻘글이 될 지언정 그저 묻혀버리기 보다는 기록해 두는 것이 후에 생각을 곱씹어 보는데 용이할 수도 있다. 엄청나게 재미있는 글을 읽었다. 평소 자주 들르는 푸그님의 블로그에서 엄청나게 재미있는 글을 찾은 것이다! 소탐대실 형국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민주, 인권 따위'가 그저 수사에 불과하다고 전제해 놓는 글은 엄청나게 흥미로웠다. "주댕이 좌파"라는 표현에 낄낄대며 웃었지만 박노자씨 글은 한 발 더나아가 "개혁 사기꾼"이라는 묘사가 등장한다. 그래서 돌이켜 생각하면 이상한 기존 주댕이 좌파 - 이 단어에는 전격적으로 동감한다. - 의 행동들이 그들의 근본적인 순수성마저 의심받게 만든 형국이다. 약간은 비약적인 그 의심(?)들이 진실이라면 소름끼치겠고 - 음모론이다! - 거짓이라면 슬픔마저 든다. 순수했던 이가 믿음을 저버리고 뻘짓을 했다거나 멍청해서 믿음을 저버릴 행동을 저질렀거나 슬퍼버린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이 또한 내 비약일까 마지막 문단의 "개혁 사기꾼" 이라는 단어는 '개혁사기꿈'으로 돌변해있다. 코에 꿰면 코걸이라고 오타 하나가지고 너무 읽는 사람 마음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가 싶다. 호소력있고 재미있다. 허나 오늘 진보신당의 원내진입을 축하하며 또 드는 생각은 유명 진보인사가 구사하는 어휘 치고는 너무 문학적이고 해석의 여지가 크단 생각도 들었다. 외국인 분이어서 그런듯 싶다. 티스토리 첫 포스팅으로 무지하게 난잡하고 두서 없는 글을 쓴다.

글을 완성도와 논리력을 키운다는 목적 하에 쓰려 하다보니 생각없이 영양가 없는 글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냥 덧붙이고 싶던 것은 많은 분들이 주댕이 좌파의 변절이 '어쩔 수 없었다' 고 생각하고 있단 것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기엔 설명되지 않는 정책들이 꽤나 있어 보인다. 부동산 타이밍 문제는 무능력이라 쳐도 FTA와 로스쿨, 비정규직 법안등은 그저 딱 보기에도 어쩔 수 없는 정책들은 아니었다.

차라리 변절이 주댕이 뿐이길 바란다. 고칠수야 있기 때문이다. 개혁사기꾼은 아무래도 혼란스러운 말이었다. 시장을 택한 노선이 '어쩔 수 없었기를' 바란다. 민주주의에 애착을 가진 형용불가한 사상적 토대를 가진 이들이 그저 실수로 부적절한 수단을 선택한 것이길 뿐이었으면 한다. 소시민의 바램엔 빌딩 꼭대기에 올라 외쳐봤자 메아리도 없다. 꼬이고 꼬인 생각들이 정리되지 못한 채로 꾸역꾸역 대어 소화불량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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