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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낸 세금으로 당신들을 공부시켰다" - 모두가 승리자 되는 복지제도 : 그런데 솔직히 가장 짜증나는 읽을거리는 편파적인 견해를 담은 문장들이다. 소득세를 어떻게 그 수준으로 높일 수 있었는지에 대한 과거 - 스스로 공부하자 - 와 반대파의 비판인 고실업률의 실상은 전혀 담고 있지 않다. 하지만 높은 누진세가 복지로 간다면 노동시장에서 유연성이 증가할 수도 있다는 뉘앙스의 문장은 꼬꼬마적인 나의 입장에선 새로웠다. 실업수당 등의 혜택은 물론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으로 새로운 일자리를 찾을 수 있을거란 기대감은 구조조정에 대한 저항을 낮추고 기업의 인적 배분을 더 효율적으로 만들 수도 있다는 메커니즘인데 신선하다. 복지 서비스가 일정 수준이 되니 사람들의 저항이 낮다는 말을 하는데 구조가 유지되고 선거를 통해 계속해 사민당 정부가 집권하는 것을 보면 틀리기만 한 말은 아닌 것같다. 마지막 문단은 아주 재미있는 발상이다. 제목과 같다 '우리들이 당신들을 공부시켰다'.

의사와 벽돌공이 비슷한 대접을 받는 사회 - '입시 과열'이 안 생기는 이유 : 누진과세는 세전 소득의 불균등을 세후 같게 만든다. 따라서 직업에 따라 실수입의 차이가 존재하기 어렵다. 대졸자보다 직업학교를 거친 후 바로 취직을 하는 것이 빠른 사회진출을 의미하고 차라리 경제력이 우월할 수조차 있다. 대학을 갈 필요가 없으니 대학이 수익성을 낼 수 없고 대학을 갈 필요가 없는 이유는 누진세가 기여한다는 메커니즘이 가능한지 생각해본다. 물론 다른 것도 있으리라 의심하여 본다. 하지만 세금이 높아질 수록 고리스크가 있는 사업에 투자되지 않고 경기 침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현대 사회는 더 이상 산업적 투자를 하는 산업 자본보다는 유동화가 쉬운 금융상품에 투자하는 금융자본이 대부분이므로, 일단 돈이 있다면 고리스크와 높은 리턴의 투자를 감행한다는 시장을 생각하는 것부터가 억지스럽다. 더불어 리스크의 감수와 투자는 민과 관의 관계가 돈독할 때 민주적인 의사 위에 정부가 맡을 수도 있다.

"'로마'만 배우는 역사 수업" - [<프레시안> 창간 7주년 : '키워드로 읽는 북유럽'] 협동 (下) : 사회적 구성주의를 설명한다. <'사실(fact)'이 하나여도, '지식'은 학습자의 수만큼 다양할 수 있다. 치열한 경쟁은 모방하는 능력을 키우는데는 유리하지만, 창조성을 소모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보기 때문이다.> 타국의 지식을 모방하고 전자본주의적 단계에서 산업화를 위해 과학기술의 발전을 도모해야 했을때 이루어진 공교육제도로는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어 나아갈 수가 없다. 한국의 경쟁력이 가장 약한 분야로 교육을 꼽은 것은 엊그제의 일이 아니다. 물론 우리나라의 공교육제도는 일제시대 군국주의의 잔재까지 남아있다. 기본적으로 '평가'와 '시그널' 그리고 '걸러내기' 작용이 '누진세로 인하여' 어느정도 필요없어진 상태에서 교육은 돈과 명예같은 인센티브가 없이도 창조성을 낳고 새로운 시대를 이끌 준비를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은 세금이 낮아서(?) 직업에 따른 빈부차가 크고 그에 따라 '평가'와 '탈락'과정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역시 그에 더불어 국가 경제에 이득을 가져올 수 있는 '학교에서의 창조성 학습 강화' 정책은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다. 평가와 탈락의 기능을 수행해야 하는 '입시제도'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의 요구에 밀려 '학교에서의 창조성 학습'은 이루어지기가 요원하다. 일단의 직업적 평등이 이루어져야만 '경쟁'의 의미로서의 교육제도의 변화를 도모할 수가 있다. 그렇다면 직업적 평등이 서비스의 질적 저하를 초래한다는 주장, 힘든 일에 대해 물적 보상이 미치지 못한다면 아무도 그 일을 하지 않을 것이란 '이데올로기'를 어떻게 타파해야하는 것인지가 다음 물음이다. 유아적이고 대답할 가치가 이미 유통기한을 넘어서버린 논리이다. 논리가 현실을 설명할 수 없을 때 궤변이 된다. 궤변과 논리는 종이 한 장의 폭과 같은 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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