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번 금융위기로 말미암아 기업의 자연도태와 적자생존이 자본주의의 건강성을 유지하여 준다는 선험논리는 사치스러운 주문으로 간주되고 있는 상황이다. > _ foog.com

ㅋㅋ '선험 논리' ..
ㅋㅋ 미국 되게 골치 아프네 ㅋㅋ 하지만 은행가들은 역시나 띵까띵까 ㅋㅋ
참 미국 자동차 업계 노동자들 요즘 힘들겄다 ;;

민주주의 참 힘드렁 힘드렁 ..

촘스키 읽다 생각난 건데 .. 보수주의자들은 주정부에 '사회정책(?)'을 위임하라고 - 언뜻 보기에 - 아주~ 민주적인 주장을 했다 ..
아 참 이 '수사학' 이라는 것이 꽤나 힘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난 분명 복지정책이나 규제정책으로 읽은 것 같은데 복지정책이라면 이어질 내용이 없고 규제정책이라면 글이 극적 요소가 가미되기 어렵고 뻔할 뻔자가 되기 때문에 이상했다. 결국 '사회정책' 이란 말로 떡밥을 던져 놓고 후술한다.

아 세금정책이고 규제정책이다. 주정부 단위로 위임된 세금정책은 물론
^-^ 한 넘이 내리니까 다른 넘더 내려떠염 ~~ ☆☆☆???!!!
참 ~ 쉽져잉 ~ ?
경쟁이란 것이 이런 상상도 못했던 결과도 가져온다. 참 복잡하다. 그리고 영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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ㅋㅋ 에리히 프롬은 언젠가 절단 내려고 했는데 이제야 첫걸음을 내딛었다 ..

예전 대학 다닐때 재미도 없고 매너리즘에 빠져 있을때 가끔 반디앤 루니스를 들러 주저 앉아 버스 끊기기 직전까지 책을 읽다 온 기억이 난다. 좋은 책을 건져서 얻은 것 같을때는 기분이 매우 좋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엔 최악이었다.

그래도 눈에 띄어 몇 장 읽고 과제 때문에 급히 가야해서 자리를 떴지만 나중에 꼭 기회가 되면 읽어버려야지 생각했던 인물이고 책인데 마침 YES24에서 싸게 쎄일을 하길래 !! 질러버렸다 ..



ㅋㅋ 매우매우 재밌는 구절을 발견하였다 ..

소유의 양식에 관하여 구체적 예를 들어 설명하려고 하는데 그 처음에 나온 대목이 매우 재미있다. 나에게까지 제대로 적용되는 양식이었기 때문이다.

이른바 학습양식에 관하여도 소유적 태도와 존재적 태도를 구별하는데, 소유적인 양식으로 학습하는 이들의 경우엔 학습 대상의 어휘나 사상을 외우고 그대로 소유하며 집착하려는 태도를 보이는 반면 존재적 학습자는 능동적인 태도를 보이고 항상 새로운 것을 발견하며 자신의 것으로 학습내용을 재구성하여 만들고 학습 뒤에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 찔렸다 ..
나도 존재적 학습 태도를 취할 때도 있지만 가끔 책이나 문장, 어휘들에 집착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저런 식으로도 설명될 수 있구나 싶어서 정말 신기했다. 난 단지 내가 해당 학습주제에 너무 종속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고 주체적으로 생각하려는 태도가 부족해서 그런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저렇듯 언어학적 혹은 심리학적으로 분석하니 매우매우 흥미롭지 아니할 수가 없다 !? 뭥미 !?

발전, 불안감.

일기 2009. 5. 7. 11:17

갑자기 겉만 핥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그냥 재미로 하는 것도 있지만 내공 기르기가 가능할 수도 있다는 희망찬 믿음도 있었기에 더욱 그렇다.
불안과 실망은 믿음과 기대로 인하여 발생하는 바가 크다.

엄청나게 바빠도 정작 실속이 없거나 그런 느낌과 불안을 갖는 이들처럼
그네들을 비판하거나 솔직히 비웃었던 나 역시 비슷한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감이 엄습해 왔다.

더 노력하고 달려야 하겠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다. 나를 발전시키고 싶다.



세상에 '나름대로' 라는 표현은 '안했다.' 라는 표현과 거의 동급인 것 같다.

그리고 역시 '진심' 은
확고할 경우 그다지 중요한 요소나 믿을만한 요소는 아니다.
그런 경우 차라리 그 과정과 표현이 중요해 진다.
그것이 개인간 관계이든지 사회적 관계이든지 말이다.



지금 은 젊으니 다 빨아들이자. 타인의 생각에 종속되려 하지 말자. 내가 주체가 되어 받아들이고 생각한다. 하지만 바뀜이 없이 아집만을 갖지는 말고 모든 생각을 수용해 보자. 스스로와의 관계에선 진심이 중요하다.

나비효과?

일기 2009. 5. 7. 10:56

집 앞에 새와 나무가 많다. 웹 서핑을 하는 중 손 씼고 기지개를 피러 창가로 갔는데 마침 귀엽고 자그마한 새가 날아든다~ 정말 예쁘다. 진짜 예쁘다. 한걸음 다가가니 근처 나무로 피한다. 계속 쳐다보고 생각하다 설마하는 생각에 또 한걸음 가니 놀이터로 토낀다! 으음 .. 나비효과가 생각났다 .. 세상은 참 알쏭달쏭한 일들로 가득 차있는 듯싶다. 너무 오바했나?

일전에 마케팅과 인문교양 수업을 같이 들은 일이 있었다. 대학 3학년때 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주 혼란스러운 강의들이었다. 아직 어려서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았고 직접적 경험보단 배워야 비로소 아는 꼬꼬마로서 배경지식이 없던 탓이다. 마케팅 수업에서는 열심히 소비자들에게 소비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방법에 대하여 전략 및 전술적인 열강을 하는 반면 인문교양 수업에서는 마케팅과 광고 및 공교육 제도에 대해서 신랄한 비판을 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시장제도에서 구매력이 없는 인간은 아예 '생각의 대상' 조차 아니다. 잠재적 소비자들을 대상으로 마케팅이나 광고 전략에 접하기 전에는 일지 않았던 욕망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인간을 존재적 실존이 아닌 소유적 실존으로 만드는 사회양식은 매우 비판받았다. 더불어 놀라웠던 점은 대학교 마케팅 수업에서 인간을 대상으로 엄청난 전략을 가르치고 있는 점이었다. 새삼스러운 일인지 모르나 해당 상품을 구매하지 않으면 불행한 마음을 가질 수 있게끔 마케팅 전략을 짜라는 수업 내용은 나를 경악시키고도 남았다.



절대 진리나 선이 부재한다는 것쯤은 이제 아는 수준이 되었다. 충돌하는 이론과 주장을 동시에 접하면서 일던 혼란도 이제는 차라리 재미있고 흥미롭게 볼 수 있는 정도는 되었다. 개인에게 있어 충돌하는 가치관을 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정립시키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사회에서 타인의 입장을 어느만큼 존중하고 타협에 이르는가도 중요한 일이다.

그냥 일전의 경험이 왠지 가슴을 차올려서 끄적이게 되었다. 지금은 사민주의를 까는 입장과 옹호하는 입장을 동시에 접하고 있다. 이제나 저제나 양극단이 아닌 것은 유리하기 보다는 까이기 십상이다. 밑천이 슬슬 드러나고 감정만을 끄적이는 때에 다독과 다상량이 더 필요한 날이다.

사람의 생각이란 그것이 자본에 의한 것이든 학문에 의한 것이든 항상 무언가에 종속적이기 쉽다.

제목을 짓다 생각했다. 나는 생산요소조차 되지 못하는 비경제활동 인구구나 흑흑.
-
턱 괴고 서핑하다 일전에 보았던 시대정신 동영상을 보았다. 처음 보았을땐 꽤나 충격적이었고 결국 내가 내공을 기르고 싶다는 욕구를 가지는데 일조한 바가 있다. 지금에야 다시 보니 허점들도 많다. 역사적 언급들이야 딴지를 걸 수 있는 입장이 안되지만 빚을 갚는데 더 많은 빚을 창출해야 한다는 식의 생각은 화폐의 빚은 일괄적인 시간에 갚아질 필요가 없다는 점과 다양한 화폐공급 경로를 무시하는 발상이기 때문에 조금 극단적이다. 하지만 역시나 극적인 효과를 준 동영상은 거부감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재미있기도 하다. 언젠가 2페이지만을 읽은 뒤 졸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 푸코의 책을 교수님의 말씀을 빌려 인용하자면 마치 사회는 감옥과 같다. 사람이 가지는 생각이라는 것이 본래 주체적이기 어렵다. 미디어는 물론 정치에 영향을 받은 교육 및 문화 등에 영향을 받는데 결국엔 사회의 정치 및 경제적 영향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문제는 생각이 어디서 왔는가하는 각성을 가지게 되어도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사회 시스템과 죄수복을 입고있는 자신을 발견할 뿐 어떻게 할 도리가 마땅찮다는 것이다. 경제력이라는 쇠사슬로 묶여버린 현대 도시인들에게는 지속적인 소비가 욕망되고 그를 위한 생산이 불가결하며 간간히 얹혀지는 빚이 그의 '어쩔 수 없는 노동' 을 강요한다. 상당히 세련된 생각이기도 하고 사실이라면 상당히 세련된 전략이기도 하다. 굳이 음모론을 들먹이고 소수가 세계를 지배한다고 극단적으로 생각치 않아도 불균등한 구조와 계급적 이해가 걸려 쳇바퀴가 되어 돌아간다.
지금에서야 열폭증세였다는 것을 인정하지만 과거 생각대로 산다는 아주 매력적인 문장을 공격했던 내 감정이 바로 이 곳에 기반되어 있다. 그놈의 생각이 도대체 어디서부터 나온 것인가하는 성찰이 없이 모두가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비슷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그러면서 자신의 감정과 느낌, 만족 및 쾌락과 행복에 '노예'가 되어 살아가는 모습이 지금 읽고 있는 책과 함께 오버랩된다. 세속적 행복추구가 최선의 삶이라는 식의 문화적 감성 역시 자본주의적 시대정신이나 과거 기독교적 신앙과 다르지 않은 체계적 기만일 수가 있다는 이야기다. 도대체 나의 행복과 감성이 왜 그것이 반응 하는지 인문학적 회의감 없이는 우리 모두 정치 경제적 감옥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모든 것이 돈에 영향을 받기 때문이라는 진부한 사실 때문이다. 회의감을 가지고 진짜 나로부터 시작해 비판적인 자아부터 주체적인 사상을 가지고 생각을 발전시켜 나갈때 비로소 생각대로 사는 것이 의미있어지는 것은 아닌가 싶다. 물론 강요할 생각은 없다. 그보다 중요한 것이 민주주의와 존중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주의적 가치에 의해 강요될 수 없는 생각들은 경제력에 억압받거나 혼자 표류하게 되고 ,자본주의적 과자를 열심히 행복하게 섭취하는 기만당하는 노동자들로 가득찬 '생산요소' 들은 행복하게 잘 살아간다. 어떤 이는 이야기한다 행복을 느끼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자신을 기만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사는대로 생각해버린 사람들이 이야기 하는 생각대로의 삶이 사는대로 사는 삶과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궁금함을 남겨본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아무리 각성하더라도 왠만하면 그냥 쳇바퀴의 한 요소가 되어버린다. 가장 무서운 것이 그것이다. 가장 세련된 것이 그것이다. 이제 앎과 정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개인주의와 함께 생활과 가정에 '충실' 해야만 하는 도시인들은 알더라도 그저 기존의 양식대로 살아가는 수 밖에는 없다.
그리고 서핑중 '우리' 라고 지칭한 이들을 타자화하는 구역질 나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우리' 를 타자화하며 비난하며 비꼴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 그것이 '우리' 이고 나이고 너이고 나의 가족, 너의 가족과 나와 너의 친구들이기 때문이다. 부정적인 어감을 붙일 생각은 없다. 잘못은 그들에게 있는 것이 아니니까 말이다. 하지만 변화해야할 주체는 잘못이 없는 자들, 그들이 주체가 되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은 새삼 당황스럽다. 나 역시 '생산요소' 가 되어 행복하게 잘 살아갈지 궁금하다. 흔히 거부감 없이 쓰이지만 자신 혹은 친분이 있는 자에게 적용하며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단어이다. 그리고 꽤나 기분나쁜 단어이다.


원달러 환율하락은 원화강세를 의미한다.

1. 일본 대비 수출경쟁력 하락으로 인해 수출기업 매출악화가 야기되고 해고까지 발생할 수 있다.
2. 원화의 강세와 주가의 상승은 국내상륙 외국인 투자자에게 빠져나갈 수 있는 호기를 제공한다.

참 다양한 관점들이 많다. 하지만 외환에 관하여 문외한인 나로서는 USDJPY의 움직임과 USDKRW의 움직임을 의미있는 수준에서 비교분석하기 어렵다.
단기적인 의미에서 자본의 움직임을 분석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분석가능한 배경지식도 없고 알고 있는 수단들도 없다. 외인들의 한국국채 단기물 위주의 매입전략은 고금리를 노리고 추후의 원화강세를 통한 수익률 노리기로밖에 풀이가 안된다. 수준낮은 나의 생각으론 역시 대다수의 말마따나 한국정부는 그저 노리개감으로 비춰지는구나 싶다.


편하게 편하게 쓰려고 해 버릇하는게 좋겠다 싶다. 뻘글이 될 지언정 그저 묻혀버리기 보다는 기록해 두는 것이 후에 생각을 곱씹어 보는데 용이할 수도 있다. 엄청나게 재미있는 글을 읽었다. 평소 자주 들르는 푸그님의 블로그에서 엄청나게 재미있는 글을 찾은 것이다! 소탐대실 형국이야 그러려니 하지만 '민주, 인권 따위'가 그저 수사에 불과하다고 전제해 놓는 글은 엄청나게 흥미로웠다. "주댕이 좌파"라는 표현에 낄낄대며 웃었지만 박노자씨 글은 한 발 더나아가 "개혁 사기꾼"이라는 묘사가 등장한다. 그래서 돌이켜 생각하면 이상한 기존 주댕이 좌파 - 이 단어에는 전격적으로 동감한다. - 의 행동들이 그들의 근본적인 순수성마저 의심받게 만든 형국이다. 약간은 비약적인 그 의심(?)들이 진실이라면 소름끼치겠고 - 음모론이다! - 거짓이라면 슬픔마저 든다. 순수했던 이가 믿음을 저버리고 뻘짓을 했다거나 멍청해서 믿음을 저버릴 행동을 저질렀거나 슬퍼버린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이 또한 내 비약일까 마지막 문단의 "개혁 사기꾼" 이라는 단어는 '개혁사기꿈'으로 돌변해있다. 코에 꿰면 코걸이라고 오타 하나가지고 너무 읽는 사람 마음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닌가 싶다. 호소력있고 재미있다. 허나 오늘 진보신당의 원내진입을 축하하며 또 드는 생각은 유명 진보인사가 구사하는 어휘 치고는 너무 문학적이고 해석의 여지가 크단 생각도 들었다. 외국인 분이어서 그런듯 싶다. 티스토리 첫 포스팅으로 무지하게 난잡하고 두서 없는 글을 쓴다.

글을 완성도와 논리력을 키운다는 목적 하에 쓰려 하다보니 생각없이 영양가 없는 글이 되는 것 같아 안타깝다. 그냥 덧붙이고 싶던 것은 많은 분들이 주댕이 좌파의 변절이 '어쩔 수 없었다' 고 생각하고 있단 것이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라기엔 설명되지 않는 정책들이 꽤나 있어 보인다. 부동산 타이밍 문제는 무능력이라 쳐도 FTA와 로스쿨, 비정규직 법안등은 그저 딱 보기에도 어쩔 수 없는 정책들은 아니었다.

차라리 변절이 주댕이 뿐이길 바란다. 고칠수야 있기 때문이다. 개혁사기꾼은 아무래도 혼란스러운 말이었다. 시장을 택한 노선이 '어쩔 수 없었기를' 바란다. 민주주의에 애착을 가진 형용불가한 사상적 토대를 가진 이들이 그저 실수로 부적절한 수단을 선택한 것이길 뿐이었으면 한다. 소시민의 바램엔 빌딩 꼭대기에 올라 외쳐봤자 메아리도 없다. 꼬이고 꼬인 생각들이 정리되지 못한 채로 꾸역꾸역 대어 소화불량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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