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론적 역사관으로서 파시즘의 등장을 깡그리 반박한다. 가독성이 뛰어나 재미있게 읽고있다. 

꼬꼬마인지라 아직 이런 책 보고 있다. 처음 내용이 임팩트가 있어서 계속 염두에 두다가 최근에 세일로 책 사서 주욱 보는 중인데 - 책 읽는 습관이 워낙 느리고 이것 저것 보는 주의라 - 갈수록 흥미진진하다. 역시 책 내용이 재미있을 수록 그리고 뒷 내용이 정말 궁금할 수록 책 읽는 속도는 빨라진다. 해당 내용이 간결하고 배울 점이 있다면 글자를 소유하려는 강박이 생기고 읽는 속도가 좀 덜 빠르며 머물러 곱씹는데 반해 소설과 같은 구조를 이루고 있는 책이면 상당한 흥미를 가지고 책장을 계속 넘기게 된다. 점점 갈수록 내용이 부실해진다고 생각했는데 볼리비아에서의 사례를 소설처럼 말해주는데 흥미진진하다!

 요즘 읽는 책들 중에 가장 유익하고 재미있다.
 
 충동적 행동의 집합이 소외된 삶이 된다. 스스로부터 소외된 소유적 실존양식으로 사는 것이다. 언어와 장면, 음식 등에 대한 강박적 기억욕, 소유욕은 기계적이고 소유적인 삶의 양식이다.

 스피노자를 인용한다. 삶을 견딜 것인가?
 그런 심리적 노예는 현대에도 존재하고 있다. 는 말이 이제야 이해된다.
 
 진심으로 감사하다. 이렇게 생각의 기회가 주어진 것을.
 내가 온전히 살 수 있도록 도와준 무언가에게 감사하다.

 --- 감성을 소유하는 나를 발견한다.

인간은 타 동물과 달리 욕구를 확대시키는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 자아실현 행위를 꼬아 비판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억지스러울까?



도그마를 비판하면서 도그마에 빠지는 듯하다.

번역이 제대로 안 된 것인지 쉽게 읽혀지는 책은 아니다. 중간 중간에 비문도 살짝 보이는 것 같고 글의 호흡이 너무 길다. 했던 말을 또 하고 예를 들기보다는 추상적인 관념의 서술로 일관한다. 하지만 보다보면 조금씩 재미있는 내용도 나오는데 특히 도덕주의자들과 합리주의자들을 비판하는 내용이 재미있다. 인간지성의 확대로 사회적 불합리를 조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18세기 계몽주의에서 비롯된 생각이라고 말한다. 그에 따르면 인간 행동의 변화가 이성이나 도덕적 변화로 달성되기 '어렵다'고 한다. 역시 그에 동의하자면 인간 이기심 행위를 주류 경제학의 세뇌적 도그마로 책임을 돌리는 견해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사실상 다른 생각들을 현실적이지 못하다거나 효용성이 없다고 말하면서도 자기 자신 역시 '그러니 적당한 것이 제일 좋다' 라는 식의 힘빠지는 주장을 한다. 그리고 그 역시 그 근거가 명확치 못하고 자연충동이나 본능으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하려 하기 때문에 자체로써 도그마적 성격을 가지고 있어 아쉽다.



갈수록 재미 있다. 요새 읽는 책들은 대부분 처음에 재미 없고 나중에 재밌어 진다. 근데 외국어를 번역한 것들은 원체 가독성이 떨어져서 진전이 쉽지가 않다. 내 독서 방식이 약간의 허영과 상당한 강박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까지 생각하면 더더욱 느리다. 밑줄 치는 습관 역시 능동적 재구성을 하는 학습 태도라기 보다는 강박적인 행위라 할 수도 있을 듯싶다. 재미있는 말이 나와 지나가다 남긴다.

          < 대중은 건전한 내부 갈등조차 한심한, 혹은 위험한 분열로 보는 성향이 있다. >

 .. 부키 책 참 많이 샀다 .. 살게 더 남긴 했는데 .. 천천히 다른거 읽고 읽어야 하겠다 ..
 무작정 해당 내용이 생각나 포스팅하려다 이게 나쁜 사마리아인에서 나온 이야기가 아닌 것을 순간 띡 알고 포스팅을 나눠서 한다. 그냥 붙여서 할까 생각도 했지만 너무 조잡해보일까봐서 따로하기로 한다.



 생산성에 관해 딴지를 건 대목도 주목을 끈다. 대부분의 책에서 경제학적 생산성의 문제가 아무 의심없이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음에 반하는 내용이었다. 역사적으로야 농업생산성의 증가가 산업발전의 토대가 되고 또한 산업 생산성의 증가가 자체적 성장을 가능케 하고 세계적 시장을 팽창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 또 글의 호흡이 길어졌다. 차치하고 크루그먼의 글을 읽을때 생산성에 대한 의문을 해결하지 않고 그대로 진행시킨 점이 매우 불유쾌하였다. 생산성의 통계를 내세우며 민주당을 어떻게든 지지하고 끌어맞추려는 문장들은 그 책의 제목에 대비해 나를 매우 실망시켰다. 아무튼 간단하지만 장교수는 생산성의 증가가 실업의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생산성의 증가로 인해 생산이 많아지고 그것이 곧 소득으로 이어진다면 상관이 없다. 문제는 소득으로 온전히 이어질 지 의문이다. 더불어 생산성의 증가가 있을때 그대로 물품을 많이 생산하는 전략을 기업이 취할 것인가란 의문을 가진다. 사실상 생산성의 증가가 진짜 생산의 증가로 이어지는 경우보다는 차라리 노동력을 절감하는 효과를 취하는 경우가 대다수라는 것이다. 경제전체적으로 동시일괄적으로 증가한 생산성이 올바로 소득으로 이어진다면 그에 대응하는 수요를 낳을 테다. 하지만 각 개인적으로 직면한 생산성의 증가는 기존의 예측과 경영과정을 바꾸기 보다는 차라리 눈에 보이는 코스트 절감욕구로 나타나고 노동력을 짜른다는 것이다. 고전학파는 수요에 대응하는 공급자의 전략이 물가변화라고 말했으며 케인지언들은 생산량의 변화로 대응한다고 하였다. 상식적으로 물품의 가격에 민감한 제품이라면 생산성의 증가가 가격하락으로 이어진다면 그에 대응해 이득을 볼 수도 있겠다. 잘 기억나지가 않아서 그런듯 싶다. 노동력이 짤린다는 과정의 설득력있는 주장이 기억나지 않는다 추후에 서술해야겠다.

<未完> 촘스키

북 리뷰 2009. 5. 5. 11:56

다작 다독 다상량이라지만 너무 얼토당토 않게 말만 씨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촘스키가 말하는 바가 이제는 그리 충격적인 정보들이 아니다. 그래서 굳이 블로그로 빨리 옮겨버릴 만큼 제대로 배우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문장들이 딱히 없다. 그때그때 마음에 드는 견해들은 많다.
가능한한 잡소리는 줄이자는 생각이 들었다. 권력은(?) 독점이 아니라 과점체제라는 주장이 인상적이었다. 흔히 말하는 권력이 마치 하나의 일사불란한 유기체라도 되는 듯이 표현되고 있는데 차라리 과점의 형태를 띄고 있다는 것이다.

책에 대한 소개는 필요가 없겠다. 계속해서 미완의 글들만 배설하고 있어 찜찜하다. 아마도 낚여 들어온 분이 계시다면 또한 미안하다 하지만 원체 배설글이니 이해를 부탁합니다.

한번 더 검토가 필요한 책이지만 전체적인 리뷰를 돌아본다. 초반의 유치산업 발전과 관련된 행태들은 처음 접하는 개념이라면 대단히 신선하다. 장하준 교수의 책 전반에 걸쳐 지겹도록 보는 주장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른 책에 비해 특허제도에 관해서 좀 더 자료를 준비해 공격한다. 인상받아 기억나는 부분은 특허제도로 인한 해당 산업 발전이 그리 연관관계가 높지 않다는 주장이다. 더불어 대부분의 특허받은 기술이 정부의 지원을 통해 이루어졌으나 그 이득만은 온전히 사유화된다는 점을 비판한 대목도 눈에 띄는 듯 싶다. 특허 이외의 인센티브를 너무 무시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것도 마음에 든다.
미완의 글이라도 굳이 리뷰를 하겠다고 마음먹은 인상적 주장을 싣는 문단으로 하겠다. 언젠가 산업조직론에서 배웠던 그래도 가장 기억에 남는 개념인 '동태적 경쟁' 과 흡사한 주장을 싣었다(?) 실었다(?). 시간을 경쟁시장의 고려대상으로 중히 여기고 아직 등장치 않은 잠재적 경쟁자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이론이었다. 평소 미시경제학은 어용학문이라 생각하는 터라 마음에 두어 보지 않았고 그 의미만 새겨두었던 바 굳이 더 언급하고 싶지는 않다. 장하준 교수는 '경쟁이 그토록 좋은 결과를 불러온다면 개발 도상국을 보호해주고 키워주어야 한다. 장래에 그들이 성장하여 지금의 기업과 경쟁할 수 있는 산업을 이룩한다면 그들에게 뿐만 아니라 현재의 다국적 기업들에게도 유리한 일이다. 왜냐하면 경쟁은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불러오고 사회적 효용 - 외부효과 논외 - 을 극대화 시키며 "모두를 좋게하기" 때문이다.' 고 하며 그들의 주장과 행동의 괴리를 비꼰다. 언젠가 인문학 교양 수업을 들을때 교수님이 말한 문장이 기억에 남는다.

없는 사람들은 경쟁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질것 같으면 경쟁을 주장하지 않습니다. 이길 것 같으니까 경쟁을 하자고 하는 겁니다.

신선한 말은 아니지만 당시에는 괜시리 꽤나 마음에 드는 관점이었다. 아무튼 그렇듯 경쟁을 하자는 주장을 비꼰 말이 참 재밌고 인상적이었다. 이왕 말이 나왔으니 계속 가슴에 남아 있는 교수님의 말을 하나 더 인용해 봐야겠다. 나중에 따로 쓰거나 정리하려 했지만 원체 배설글이기도 하니 그렇다. 그리고 조금 더 읽고 공부를 해야겠다. 인문학적 소양이 매우 부족한 것을 느끼며 어떻게든 푸코에 도전해서 성공해 봐야겠다.

항상 무엇이든지 회의하는 태도를 가지고 의심 하십시오. 누군가 주장을 한다면 그 대화로 이득을 얻는 이는 누구인지 인지하십시오. 모든 인간관계와 커뮤니케이션은 권력작용의 일환이며 담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담론이라는 말은 헤게모니 다음으로 나에게 깊은 인상을 준 단어요 개념이었다. 장하준 교수의 책에 대한 리뷰인데 내 개인 인상만을 적었다. 미완성이니 더 살을 붙여 나가야겠다.



민 - 관 - 시장
의 고리에서 관 - 시장의 고리를 끊을 것이 아니라
민 - 관의 고리를 강화함으로써 민 - 관 - 시장의 고리를 이루는 것이 정의상 옳다.

1인 1표의 민주주의 시대에
1달러 1표의 시장이 정부와의 고리가 끊길수록
민주주의의 손에서 멀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기본적인 정치체제로서 민주주의는 정부를 통제하고 정부가 시장을 통제하는 것이 바람직하고 옳은 일이기 때문이다. 1인 1표의 자유가 행사되어야지 민주주의의 권력을 배제한 자유는 진정한 의미의 자유가 아니다. 협소한 의미의 자유일 뿐이다. 정부의 규제가 시장의 기능을 억제한다는 것은 이데올로기일 뿐이며 설사 그런다해도 그 고리를 약화시키는 것은 얼토당토 않다. 그네가 말하는 것처럼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상충하지 않고 시장 = 자유 = 민주주의 = 시민 의 고리가 맞는 것이라면, 초점은 시민과 민주주의와 정부의 고리가 더욱 강화되어 시민이 정부를 통제하는 방향에 맞추어져야 한다. 시민 = 정부 라면 시장 = 시민 이기 때문에 정부 = 시민이기 때문이다. 시장이 정부를 께름칙해할 이유는 아무것도 없다.
^^



인플레이션! 이 무조건 나쁘다는 주장은 역시 이데올로기다. 생각해보라 인플레이션이 싫은 사람들은 임금 노동자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차라리 금융소득을 얻는 이들에게도 피하고 싶은 일이다. 오히려 경제성장의 시기에는 인플레이션이 바람직할 수가 있다는 견해를 비친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인플레가 있다면 돈을 꽁쳐두기 보다는 자산을 사려는 움직임이 강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 물론 그 자산이 부동산으로 흐르는 일은 논외로 하자 ㅠㅠ
미완! 다른 일 하다보니 씁.
 


제 3의 길 _ 앤서니 기든스
한상진, 박찬욱 옮김 / 생각의 나무


글을 쓰고 싶을 때 써버릇하며 후에 고치고 고쳐 완성시켜나가는 빌드오더를 타자고 결론내렸다. 쓰지않고 쌓아두는 것보다는 그때그때 쓰고 싶을때라도 써 나가면서 소화불량을 막고, 꾸역꾸역 대다가 머리 속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보다는 낫기 때문이다. 작문 자체에 의의를 두고 지금은 글쓰기 자체도 무작정 해대어 다작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했다.

내가 생각했던 책이 아니라 실망치 않았다고 하면 거짓말일테다. 언젠가 학교 도서관에서 재미로 보았던 그 책이 아니었다. 아마도 제3의 길 따위는 없다고 말하는 책이었던 것 같은데 왠지 몰라도 그냥 재미 있었다. YES24에서 대규모로 세일을 하길래 질러버린 약간 충동구매적 소비의 대상인 책이다.
별다르게 포스팅할만한 거리는 찾지 못하다가 문득 우리 나라의 정치지형에 관해서 생각이 들었다. 뻔한 소리인지 모르나 나에겐 처음 든 생각이라 나름 신선하다고 생각되었다. 내공을 기른다 생각하고 뻘글도 포스팅하는 나의 습관의 효시가 되는 포스팅으로 의미를 삼도록 한다. 지금의 한국 정치구도는 비록 '주댕이 좌파' 라고 할 지라도 민주당이 좌파(?)의 이미지로 은연중 사람들에게 각인되어 온 바가 있다. 물론 자유선진당이 한나라당의 표를 갉아 먹어준다면야 바람직하지만 지금으로선 민주당이 여타 진보당의 표를 먹는 케이스가 더 의미있게 다가온다. 단순히 당에 대한 지지의 태도를 떠나 보다 올바른, 바람직한 정치지형의 정립이 새롭게 요청되었기에 그리고 필요한 수순이기에 표의 분산은 지금 변화가 바람직한 상태이다.
주댕이 좌파들이 자신의 정치지형을 명확하게 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지금은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줄 수가 있다. 더 이상 낡은 중립, 온건 좌파의 이미지를 버리고 확실하게 보수의 이미지를 내세워야 한다. 시대는 변했고 지금의 유권자들에게 역사 속의 민주투사의 이미지를 가지고만 호소해서는 대한민국에 도움될 것이 하나도 없다. 어느모로 보나 민주당은 보수세력이다. 자유시장에 긍정적인 태도라는 점 하나만으로도 보수라고 불릴만 하다. 좀 과격하게 말한다면 더하여 국가의 통제에 거리낌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차라리 'LIBERTARIAN'이다. 시대의 정신자체가 신에서 시장으로 바뀌며 맹신받고 있을 때 맹목적으로 시장을 숭배했다는 비판도 가능하지만 박정희의 그늘을 꼽는 이들이 가장 많다. 박정희 자체가 권위주의자 였기 때문에 온전히 민주당의 정치지형은 자유주의를 지향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국가의 역할에 명확한 의미를 제공치 못하고 FTA로 정점을 찍어 차라리 자유지상주의자가 되어버린 점이다. 좌파에게는 우파로 비치고 우파에게는 좌파로 보여지는 지금 민주당의 상황을 관점의 차이라는 미시적 문제로 돌려버리면 한국 정치지형 변화에 답이 없다. 어중이 떠중이 정당과 이념이 아닌 확실한 자리매김을 해버리고 누구에게나 같은 시선으로 보여질 수 있는 정당이 되야 한다. 언어를 선점하는 것은 중요하다. 한국의 진보들은 단어를 이끌어 가야한다. 내 속내를 '아싸리' 드러내어 보자면, 민주당이 진보신당의 표를 먹는 구도는 지양되어야 한다. 대중에게 보수로서 각인되어 차라리 '아싸리' 우향우해서 기존 보수(?)당과 겨루어야지 어정쩡하게 '중립적 좌파'의 지대에 남아서 갈곳없는 표를 붙들어 놓는 것인 '민폐'다.
물론 이는 힘없는, 메아리도 없는 찌질한 당위성 주장일 뿐이다. 하지만 그래도 말로라도 좌파라고 하는 '민주'당이기에, 아직 포기의 대상이 되는 '막장 정치세력'이라고까지 보여지지는 않기에 그래도 그래도 '해야 한다' 따위의 술어를 쓰며 당위성을 주장하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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