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게임이론

잡담 2009. 5. 16. 19:46

정보경제와 산업조직을 수강할 적에 게임이론의 다양한 점을 많이 배웠다. 물론 조잡한 것은 기억나지 않고 차라리 동양철학을 배울 때 게임이론과 연관시켜 발표한 팀의 내용이 생각난다. 역시나 내용은 재구성한 것이다. 유교윤리와 당위성에 대하여 열변을 토하는 모습에 거부감이 들었다. 변화를 위해 의무를 울부짖는 태도는 자체로 비민주적이고 배타적인 태도다. 물리적 폭력이 가미되지 않았을 뿐 계몽적 태도를 갖는 것은 오만하다. 거부자가 계속해 용서된다면 변화 가능성이 의심되고 포기 역시 계몽이 의심되며 강요는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그렇듯 연대는 힘들다. 미꾸라지 단 한마리가 오만 인간의 생활 전략을 바꾼다. 지양되길 바라는 태도를 취할 때 이득을 얻는 다면 단 한명의 배신이 타인 모두의 전략에 영향을 끼친다. 계속해 배신자가 이득을 얻는다면 전략을 수정하는 이들이 하나 둘 발생할 것이고 추후엔 타인 전략 변화에 대한 탄력성이 적고 해당 이득에 대한 효용도와 그 변화율이 적은 이들만이 기존 전략을 고수할 것이다. 그리해 변화는 힘들다. 통합적 변화는 힘들다. 만약 변절자를 똘레랑스하지 못 하고 추방하게 된다면 자체로써 정당성은 상실된다. 그렇다해도 태도의 다름을 이유로 해당자들을 계속해 배제해 나간다면 다른 집단이 생기고 갈등을 피할 수 없다. 추후의 상황을 설명치 않아도 대충의 미래는 예견된다. 간단히 말해도 집단 간의 전략이 생기고 그들 간의 게임에선 다시 변절자 집단이 이득을 취할 것이다. 언제나 악한 자가 승리한다. 생활은 영화가 아니므로.
물론 페이오프 자체를 변화시킨다면 가능할 것이다. 지양될 태도가 행위됨에 있어 적은 페이오프를 가지고 지향될 태도가 큰 페이오프를 가진다면 장밋빛 미래는 가능하다. 하지만 만약 정말로 그러한 전략적 상황이 주어졌다면 왜 지금 모두들 해당 전략을 사용하지 않는가? '장밋빛 미래' 에 대하여 취할 수 있는 태도는 세가지다. 이것이 지금의 상황이다. 선구적 변절을 하거나 수동적 변절을 하거나 변절치 않고 이득의 감소를 감수하느냐이다. 추상적이지만 아주 비합리적이진 않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페이오프가 장밋빛 미래 지향자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면 왜 모두들 그 전략을 선택하지 않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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