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상에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공유하는 리뷰를 작성하기 보다는 개인적인 느낌을 싸지르는데 너무 집중한 듯 하여 그나마 영화에 대해 참조할 수 있을만 하고 공유할만한 영화 자체에 관련된 느낌들을 써보려 한다. 근데 더 다른 생각들이 나는게 사실이다 그리고 잡 생각이 많아지도록 하는 영화가 왠지 좋은 듯 싶다.

<경제라는 화두가 보수세력에 선점되어 있다. 사실 경제라는 화두는 진보세력의 씨앗이었는데도, 진보세력의 태동의 근본원인이 경제 논리였는데도 말입니다.>

블로그에 심취하기 시작한 나에게 블로그 써킹따위의 단어와 '이런 정보는 종이 신문을 통해 읽어야 제맛' 이란 대사는 조금 거슬렸다. 러셀 크로우가 'truth seeker' 라는 상당히 좋은 수사가 붙는 '기자' 역할을 하며 결국 진실을 찾아내고 신문사의 좋은 면을 비추며 결국의 반전 역시 희망찬(?) 내용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꼭 몸으로 뛰고 소식통과 쏘스를 통하여서만 찾는, 얻을 수 있는 정보들이 기사화 되어야 할까 싶다. 공공문서나 청문회 기록, 신문의 행간을 읽고 핵심을 비판하는 글을 쓸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stone 처럼. 1인 저널리즘과 블로그의 잠재력에 대한 논의가 많은데 그냥 무시하는 듯한 태도는 좀 거슬렸다ㅠ 보다 정보가 많아지고, 공개되어야 할텐데 아직 민주주의는 한참 멀었다. 예전에 재밌게 읽었던 기사를 링크한다. 진실은 중요하다. 진실을 '찾아내고' 그 진실을 '재구성 및 분석' 하고 견해와 주장을 하는 일도 중요하다.
'강준만과 미네르바... 그들이 주는 메시지'


군대조차 민영화 한다! _ 민간군사기업(PMCs : Private Military Companies)

아 일단 중간 부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잔잔한 긴장도 풀어주었던 '국방시스템의 민영화' 에 대하여 여론에게 주의 환기를 시켜준 것만으로도 꽤 큰 점수를 주고 싶다. 소재가 아주 맘에 든다. 얼마 전 별로 긴 시간도 아닌 몇 달전에 큰 감명을 받은 것 중의 하나인데 특히 포인트콥이 군산복합체로서 정부 국방비를 많이 헤쳐먹는 중이라는 주제는 그야말로 낄낄댐의 대상이다. 중간에 누군가 러셀 크로우에게 이게 무슨 영화 드라마냐고 소리치는 장면이 있는데 참 재미있었다. 이미 다 알려질 대로 알려진 사실이고 극적 요소가 강해서 그런가 관련 음모론(?)들은 아주 풍부한 정보를 누출해주시고 계신다. 아마도 권력이 약간은 독점적 경쟁시장이거나 과점시장이어서 한꺼번에 힘을 발휘해 여론을 통제할 만한 빅 브라더를 만들지 못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더 다른게 있어서 이걸로 퉁 치려는 수작인 것인가 혹은 그것들의 결말처럼 사람들에게 이런 거 없다 소설이다 라고 환기 하고 싶어서인가. 그 장면에는 '보이지 않는 마음' 이라는 경제학 소설이 생각났다. 거기서도 중간의 반전은 꽤나 끝내줬다. 뒤통수 제대로 치는 느낌이 들었다. 음 암튼 기업의 비리 따위나 전쟁의 비즈니스적 성격은 이미 알려질 대로 알려진 사안이라 여론에 '큰 관심' 이나 센세이션을 일으키지는 못 하는 것 같다.

이와 관련한 아주 유익하고 흥미로운 링크들을 걸어볼까 한다!

전쟁은 비즈니스다 _ foog
전쟁은 무기만 파는 것은 아니다. 식품도 보급해야 하고 자동차, 약품, 화학제품, 옷가지, 의료 서비스, 정보기기, 정보 서비스, 건설 서비스, 상수도, 가스, 전기, 석유, 재건, 군사훈련 서비스, 이 모든 것들의 유통 및 물류 등등 아주 다양한 것들이 보급된다. - 심지어 매춘까지. 민간군사기업은 현실상 독과점 형태로 군산복합체들이 카르텔을 형성하면 충분히 수주가격은 부풀리고 비용을 최대한 낮추어 서비스의 질을 형편없게 하여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할 수가 있다. 민간군사기업은 국가가 아니기때문에 국가적 마찰을 피할 수도 있다. 헬리버튼 따위야 아주 유명하다!

미쳐가는 이라크에서의 민간군사기업 _ foog
<너희가 잉여노동을 착취하는 것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나는 다만 (나에게 또는 불특정 다수에게) 물적 풍요를 가져다주는 자본주의가 잘 굴러가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러나 그것도 한도가 있으니 그 한도는 지켜달라. …… 이러한 것들에는 예를 들면 독점금지, 아동노동금지, 8시간 노동, 노동3권 과 같은 것들이 있다. …… 적어도 이라크 전쟁에 뛰어든 민간군사기업에게만큼은 개 짖는 소리임을 알 수가 있다. …… 역시 KBR 직원이었던 Linda Warren에 따르면 궁전이나 각종 청사의 재건축을 담당하는 직원들은 각종 문화재 및 귀중품을 훔쳐 eBay 에 팔곤 했다 한다. …… 그에 따르면 이라크의 업체직원들은 일종의 ‘매춘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매춘부들은 쿠웨이트에서 바그다드로 장갑자동차로 수송되었다고 한다. 충격적인 사실은 이렇게 매춘부 수송을 위해 장갑자동차가 이용되는 바람에 다른 미션에 있는 이들이 이 차를 사용하지 못해 죽음을 당하기도 했다는 사실이다.> _ foog

민간군사기업 : 전쟁의 새로운 구성요소
핼리버튼의 '누워서 떡 먹기'식 장사비법
또다시 드러난 핼리버튼의 추악한 거래
양심의 대차대조표 : 부외금융에 국방 민영화를 빗댄 것이 재밌다!

※☆☆☆☆☆미국경제의 또 하나의 복병, 이라크戰
한 해에 GDP 1.8%, 1천8백억$ 에다가 여기까지 3조$가 소비되었다. 이라크에는 군인보다 훨씬 많은 수의 민간인들이 파견되어 있다. 군수산업의 하청업자와 근처 자영업자, 노동자에게도 부스러기는 돌아간다. 그리고 이는 정치적 진보를 막는 기제로 작용한다.
미군에 쓰이는 돈은 경제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비생산적이고 비효율적인 자원 배분이다. 더구나 관련 원가는 터무니 없이 낮다. - 과다청구. 승수효과는 크지도 않다. 세금과 복지에 쓰여야 할 돈들이 적자로써 미국 미래세대에게 부담을 안기고 있다.
<그렇다면 전비가 제대로 전쟁에 투입되고는 있을까. 오히려 그러면 안 될것 같은 기분이지만 말이다.> _ foog

http://foog.com/558
http://foog.com/27
http://foog.com/28


<未完> 관련 잡담1

모순을 비판하는 자도 모순과 비판에서 썩 자유롭지 못하다. 복잡한 세상을 한 두가지 기준으로 재단할 수 없다. 과시소비를 비판하는 자들이 그 위치에 오를때 과시소비를 하지 않는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집과 차에 자아를 투영시키는 사람을 비판하는 사람이 게임 캐릭터에 자신의 자아를 투영하고 있는 모습을 상상할 수도 있다. 문학작품에서 그러한 문제를 비꼬며 인간소외를 언급하지만 사실 역사적으로 새롭게 등장한 삶의 양식이라고 표현할 만한 새로운 일은 아니란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 그가 사회에 문제됨을 찾기가 어렵다면 비판받아야 할까 그냥 인문학적으로(?) 빈정상한 것이 아닌가. 만약 그것이 결국 문제라 하면 그에 감성만 느낄뿐 마땅한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도 없는 것 역시 비판받을 만하다.


<未完> 관련 잡담2

아 재미가 있다 그리고 스포일러도 있다. 마지막이 마음에 들지가 않는다. truth seeker 라서 'truth'가 더 중요했던 기자의 입장은 이해가 가지만 일단의 시나리오가 마지막에 와서 기대를 져버린다. 'cliche' 를 피하기 위한 억지구성이었다는 느낌도 든다. 영화 중간의 내용들이 벌써 '진부한 편견' 따위가 되어버렸다는 말이 되는데 정말 기분이 묘해진다. 나조차도 많은 '부조리' 들에 저항하거나 비판, 행동하는 것보다 글이나 싸지르고 '새삼스러운 일들' 이라고 표현해버리는 모습이 또 묘하다. 1학년 국어작문 시간에 썼던 모순을 비판하는 자의 모순을 고발하는 느낌이 든다. 하지만 그 고발자는 모순이 없지 않고 모순은 다른 사회적 모순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으며 모순 자체가 기준에 의거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에서 생각이 복잡해진다. 배설글로 반성하는 것이 '반성의 배설' 로 끝나버리고 나는 누군가가 말했던 일상 파시즘 속에서 살아간다. 영화에서도 말했듯이 블로그 써킹질로 생각있는 척하다가 돌아서면 쪼꼬릿을 먹으며 맛있다고 생각할 테고 앰네스티에 가입하며 1만원을 내는 것보다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계정 등록을 2만원에 하며 더 큰 효용감을 느낄 것이다. 그리고 망설임을 가졌다는 것으로 스스로를 위안하며 유교적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그러한 말이 잇는 것 같다.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범죄다. 늘 행동하고 싶어하지만 고종석씨의 글을 읽으며 감탄하는 척 하고 '개인주의적 진보' 가 아주 참신한 개념이라고 생각하며 운동권을 비판하고 어느새 내 정치지형은 보수로 간다. 물론 보수와 진보를 그렇게 나누는 관점이 정책을 떠난 색깔론으로서 그다지 실질적 의미를 가지지는 않는다. 양비론따위는 역겹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의 관점을 명확하게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윤동주 시인이 자신과 최후의 악수를 한 것처럼 나도 악수를 해 나갈 것이다. 개인주의적 연대를 하지만 물론 정치인 처럼 악수하지는 않을 것이다. 알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것을 '권력이 경제적 헤게모니를 잡았다.' 라는 입장으로 정당화하는 것이 그저 '정당화' 로 치부되고 행동하는 양심과 행동하지 않는 양심은 분열한다. 그래서 헤게모니는 무섭다. 개인의 효용수준까지 문화적 배경으로 만들어버리고 벌써부터 '효용' 이라는 단어를 써가며 스스로의 양심을 합리화 시키고 있지 않은가. 사람들의 행동이 정치 및 여가 영역과 경제적 영역으로 철저하게 분리되고 그것은 당연시되거나 '또' 권력의 조장이라 '까거나' 한다. 물론 행동의 합치는 '어렵다' 고 말한다. 그것 부터가 '경제적 헤게모니' 가 아니냐고 생각한다. 자발적 복종이라는 개념은 유통기한을 지났다. 더불어 알아도 행동하지 못하는 경제적 헤게모니도 나에게만 신선했을 뿐 사실상 유통기한을 한참 넘긴 단어일 뿐이다.


앎이 효용구조를 바꾸는 경우
효용구조의 변화가 행동의 변화에 큰 탄력성을 갖는 경우
변화의 전위가 된다.


헤게모니는 주로 문화적 관점에서 쓰이고 경제적인 관점에서는 '강제' 라는 단어가 쓰이는 것을 알았다. 이런 식으로 공부해 나가는 것이라 스스로를 위안한다. 그렇다고 그런 관념들에 패배주의적 입장을 가지고 무기력증을 보이는 것은 한심한 자화상이고 그다지 바람직한 태도는 아니다. 내 행동이 자기 모순을 가지는 것이 '효용의 구조' 에서 나왔다면 그 효용의 구조를 바꾸면 되는 것이다. 그것은 '진심' 에서 비롯된다. 바꿔지는 것이다. 앎과 언론, 각성에서 비롯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알아도 행동치 않는 이들을 비판해서는 똘레랑스라 할 수 없다. 앎이 효용구조를 진심으로 바꾸고 그 이들이 행동함으로서 변화의 전위대가 되는 것이다. 어쩔 수가 없다 똘레랑스를 진짜 똘레랑스로 만들려면 전위대의 존재와 전략을 인정하는 수 밖에는 지금 생각나는 것이 마땅찮다. 시간을 가지고 점진적 개혁을 꾀하는 것이 나의 '주의' 이고 다양성을 존중하여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효용구조가 바뀌지 않거나, 효용구조가 바뀌어도 행동하지 않는


비꼼이 어울리고 모순되지만 어차피 인간은 모순이고 변화하지 않는가?

하지만 결국 내가 행동하지 않는 사람이고 그 곳에서 멈추었기 때문에 이런 관용이 필요하다 말하고 나의 마음 편하려고 정당화시키는 것은 아닌가 생각했다. 그래서 행동하는 이를 더 존중해줄 수밖에 없다. 행동하는 이가 계속 행동한다면 좋은 일일테고 행동하던 이가 변심한다해도 그것을 탓할 만한 자격이 되는지 의심해본다. 아쉬운 일이고 비판받거나 냉소를 받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행동하지 않는 이보단 낫지 않은가? 비꼼이 어울리고 모순되지만 어차피 인간은 모순이고 변화하지 않는가?

 이전 1. ···. 3. 4. 5. 6. 7.  다음